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엔파커스, 2019)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과거에 혹은 미래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우리의 기억 속에, 우리의 예측 속에 있다. 우리는 영원불멸을 갈망하고 시간의 흐름에 고통스러워한다. 시간은 고통이다. (...)우리는 시간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라는 소중한 존재를 선물하고, 모든 고통의 근원인 영원에 대한 허무한 환상을 만들게 한다.(196~7쪽)
내가 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화의 오류다. 수많은 동물들이 포식자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드러워하며 도망친다. 그것이 건강한 반응이고 그래야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잠깐 동안의 두려움일 뿐 계속되지 않는다. 이 두려움 덕분에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이 지나친, 전두엽이 비대한 털 없는 유인원이 탄생했다.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되는 특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 유인원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물론 두려움의 본능을 일깨워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게 해주기는 한다. 나는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 가지 진화의 압박에 의한 우발적이고 어리석은 간섭이자, 우리 뇌 속에서 발생한 잘못된 자동 회로 연결의 산물일 뿐 특별히 유용하다거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일정한 기한이 있다. 인류도 마찬가지다.(211쪽)
인문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과학저술을 읽을 때 일종의 불안감이 든다. 그것은 마치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이 외국여행을 떠날 때의 불안감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외 여행을 떠날 때에 갖게 되는 설렘 같은 것도 있는 것처럼, 과학책은 그런 설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책은 수학인문학을 개척한 후배가 반드시 읽어야 한다며 강추한 책이라 구입하게 되었다. 양자중력이론의 선구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쌤엔파커스, 2019)이다. ‘시간’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친숙하지만 막상 그에 대해 말하라면 할 말이 별로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시간에 대해서 한 권씩이나 설명한 책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가득하다. 게다가 제목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이니 우리네 상식과 충돌한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이정도면 충분하다.
이 책은 우리가 경험하는 통상적인 시간관념인 유일성, 방향성, 독립성, 현재성, 영속성의 특성을 하나하나 친절하고 자세히 비판하면서 이러한 관념은 지각 오류의 산물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특수성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유한한 크기를 지닌 매우 작은 양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런 양자들의 불연속적이고 불확정적인 요동이다. 또한 중력이론(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물질 분포에 따라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흐르고 공간도 다르게 휘게 되어 우주에는 유일한 시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시공간들이 존재한다.
지은이는 이 두 이론을 결합한 양자중력이론의 대가이다. 그는 양자론과 중력이론을 종합하여 시간은 유일하지도, 특정한 방향성을 띄지도, 독립적이지도, 현재라고 할만한 것도, 영속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통상적 시간의 개념이 모두 뒤집힌다. 과학의 눈으로 우리의 상식은 파괴된다.) 심지어는 우리가 통상 사물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105)라고 말한다.
카를로 로벨리는 이전의 저서인 《모든 순간의 물리학》(2016), 《보이는 세상은 실제가 아니다》(2018)에서 이미 우리가 통상 물질, 에너지,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그러나 과학계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시선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에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는 특히 ‘시간’ 개념을 과학사적으로 추적하여 비교분석함으로써 “우주 본래의 원초적 시간에는 순서나 질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흐름이 없”으며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 사건들의 관계이며, 이 관계들의 동적인 구조를 나타내는 양상”임을 과학적 수식을 동원하지 않고, 인문학적 언어로 설득력있게 논증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을 하나하나 공략하여 부수고, 그렇게 부숴놓은 페허에 새로운 과학이론을 선보이고, 마지막으로 이 과학이론과 우리의 상식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럼에도 우리는 왜 우리의 상식을 고집하게 되었는지, 그것의 유용성과 한계는 무엇인지 서술한다. 이 순서를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과학의 세계와 상식의 세계를 둘 다 이해하면서, 묘하게 결합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시간을 비롯한 삶에 대하여 우주적 시선과 더불어 지구적 시선, 그리고 인간의 시선을 동시에 갖게 된다. 이른바 ‘겹눈’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외눈박이 괴물로 살았는지 깨달음과 동시에 거대한 시선이 주는 장쾌함에 감탄하게 된다. 나의 인문학적 표현으로 말해보자면, ‘참새’의 시선으로만 살다가, 우주로 도약하는 ‘붕새’의 시선을 갖게된 과학계의 장자(莊子)를 만난 기분이다.
<추신> 위에 인용한 부분은 그러한 시선을 갖게 된 저자가 인생을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주는 일단을 옮긴 것이다. 인용구는 관조적이고 부정적인 어조로 느껴지지만, 책 후반부에 들어나는 인생관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말인즉, 읽어봐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