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안,《읽는다는 것》(IVP, 2020)
칸트는 읽기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을 읽을 때, 남의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언제나 자기 눈으로 보려고 애쓰십시오.” 저는 성경을 읽는 사람도 이 충고를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눈으로 읽고 남의 생각으로 받아들인 말씀은 나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나의 눈으로, 나의 지성으로, 나의 생각을 말씀 앞에 내어놓고 씨름하며 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5쪽)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능동적으로 다가서고 능동적으로 문장을 읽고 이해하고 파악하려 할지라도,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성경 말씀은 오히려 우리를 말씀 앞에 발가벗겨, 그야말로 방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로 인해 심지어 상처를 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이 있는 지점에 까지를 우리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성경을 읽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숨결로 쓰인 성경이 능동적으로 우리를 읽어 내고 말씀 앞에 우리는 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때 완전한 수동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이 우리를 읽을 때의 읽기 방식은 ‘수동적 읽기’이고 ‘상처 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읽기’입니다.(113쪽)
강영안은 나에게 무엇보다 레비나스를 알기 쉽게 해설한 철학자이다. 그는 레비나스가 쓴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1996)을 번역한 학자이자, 그 어렵디 어렵다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쉽게 접근하도록 풀어 설명한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의 저자이기도 하다. 나는 우치다 타츠루의 레비나스 해설서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갈라파고스, 2013)을 읽고 레비나스에 대해 급관심이 생기면서, 레비나스의 책들을 읽기 전에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안내자를 찾던 중 강영안을 발견하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최근의 나의 관심사는 읽는다는 것과 쓰는다는 것이다. 독서와 집필, 나는 이 두 주제를 올 한해의 주제로 삼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고 있다. 그러던 차 강영안의 신간 《읽는다는 것》(IVP, 2020)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책도 나오기 전에 선주문해놓고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러한 간절한 기다림은, 어렸을 적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다음 권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루가 멀다하고 만화방을 기웃댔던 경험과 맞먹는다.) 강영안 선생이라면 나에게 ‘읽는다는 것’에 대하여 한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드디어 책이 입고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걸음에 뛰어가(사실은 차를 몰고 달려가) 구입하였고, 또 한숨에 읽어버렸다.(사실은 2시간 정도 걸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 반 그냥 반이었다.
우선 '만족 반'부터 말해야겠다. 그의 이전 책 《일상의 철학》(세창출판사, 2018)년도에는 우리네의 일상을 ‘현상학’, ‘해석학’과 ‘윤리학’으로 크게 구획하여 일상의 삶을 철학적으로 탐구하였다. (이 책은 별도로 독서노트를 마련할 생각이다.) 나는 이번의 신간이 이 책과 연속선상에 놓인 것이라 생각했다. 읽는다는 것의 철학적 탐구를 기대했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의 신간은 그 연속선상에 놓여있기는 하다. 문자와 읽기에 대한 철학사적 탐구와 동서양철학자의 비교, 읽기의 현상학과 해석학, 윤리학은 다시금 이 책에서 재활용되면서 깊이를 더했다. 여기까지가 나의 만족지점이다. (이것만해도 어디인가?)
‘그냥 반’이라고 말한 이유를 굳이 말해보자면, 강영안의 복음주의적 성서관이 내가 떠나온 과거와 연관되어 있었기에 갖게 되는 ‘낯익은 이질감’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들의 불편함 때문이다. 그는 주희(朱熹)의 경전 독서법과 중세 수도원에서 실천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법)’를 비교하면서 주관과 객관에 매몰되지 않고 신성(神性)에 다가가는 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실천하는 ‘경건의 시간(Quiet Time)’에 대한 ‘인격적 읽기’를 독려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복신앙이나 관행적 신앙관에 사로잡혀 있는 정통(?) 교인들에게는 강영안의 독서법이 매우 인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서에 대해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권장할만한 데, 그것은 ‘읽는다는 것’이 읽는 것이나 정보습득에 그치지 않고 삶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는 저자의 일관된 ‘독서관’ 때문이다. 현상학과 해석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리학으로까지 확장되는 독서는 비단 성경(혹은 성서)를 읽는 교인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 일반적인 독서인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저자가 부제에서 밝혔듯이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목적을 갖지 않은 독자들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독서법을 활용하여 자신의 ‘독서법’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추신 1> 나중에 조사해보니, 저자는 철학적 저술뿐만 아니라 종교적 저술도 다량으로 생산하고 있었다. 보수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라면, 강영안의 종교적(기독교적) 저술로 해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수적인 종교관 속에서도 성속의 균형감을 갖고, 신학과 철학의 접점을 찾는 성실하고 독실한 학자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강영안은 그런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다.
<추신 2> 만약에 당신이 교회를 다니는데, 성경읽기를 멈췄거나, 더 이상 성경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또 아직까지는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강영안의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활력을 잃은 ‘선데이 크리스챤들’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