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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Oct 07. 2020

2020 독서노트 92 : 고병권의 <자본>

고병권, 《자본의 재생산》(청년의상상, 2020)

나는 제7편의 도입부에서 봉우리에 올라 있는 마르크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자본』 I권의 봉우리를 함께 오른 독자들에게 그는 빙 둘러 있는 산맥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쪽이 유통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저기 오른쪽 봉우리를 거쳐 왼쪽 봉우리로 가고 다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생산의 봉우리로 돌아옵니다. 저쪽에서 일어난 일을 아직 상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저기 왼쪽에서 노동력이나 생산수단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면, 혹은 저기 오른쪽에서 생산물이 판매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의 증식은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본 것은 전체 순환의 일부인 겁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순환의 일부였던 거죠. 이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돌아볼까요. 그 길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보입니까. 무엇이 보입니까.”(33~34쪽)     


고병권의 책 쓰기도 대단하지만, 나의 책 읽기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고병권은 자본 시리즈를 12권으로 약속하고 2달에 한 권씩 꼬박꼬박 쓰고 있다. 나도 그의 출간에 맞춰 꼬박꼬박 구입하여 읽고 있다. 마르크스가 쓴 《자본 1》을 12권으로 나눠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3년에 걸친 고병권의 작업계획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잘 진행되어 이제 10권째에 도달했다. 10번째 책의 이름은 《자본의 재생산》(청년의상상, 2020)이다.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를 보니 1,152점이다. 기대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혹시나 해서 10권의 세일즈 포인트를 다 살펴보았더니 최고점인 1권이 2,275점이고, 최하점은 9권으로 908점이다. 이 정도면 이 기획은 망한 수준이다. 책이 출간되는 대로 따라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책을 읽는 독자가 거의 없었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책의 수준이 떨어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국내에서 가장 신뢰하는 철학자 중 한 명이 고병권이다. 그의 책은 그 어느 것도 수준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자본 시리즈는 그중에 최고에 해당한다. 청년시절 읽었던 《자본》을 이해하기 쉽고 심도 깊게 풀이했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해도 조금도 시대착오적이지 않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 《자본》은 낡아빠진 고전이 아니라, 오늘날 읽어도 그 의의가 전혀 손상되지 않는 자본주의 분석서다. 마르크스가 왜 말년에 영국의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저술에 몰두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에게 최고의 지적 선물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병권은 그 마르크스의 노력을 오늘날에 되살리는데 가장 왕성한 집필 시기 중 3년이나 투자하고 있다. 그의 노력에 비하면 독자들의 반응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차가운 것이다.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네 독서환경이 가벼워졌다고 해도,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책들이 서점가에 널려있다고 해도, 이론서보다는 에세이가 대세라고 해도, 양서(良書)에 대한 대접이 이 정도여서는 안 된다. 철학과 인문학,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은 독자들의 분발을 요청한다.


각설하고. 10권은 자본, 노동, 상품 등 각론에 해당하는 이론적 탐구를 종합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자본이 재생산되고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을 묘사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려면 자본의 재생산이 불가피한데, 이는 자본만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상품의 생산-유통-소비-재투자의 순환고리는 경제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전반에 걸친 공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영역의 순환을 자본에게만 유리하게 구성하는 것이 필연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미래사회를 새롭게 구상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다시 조망해보고, 분석하고, 진단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번 10권은 그러한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디딤돌이 될 것이다. 현대사회의 비약적 발전은 창조적 소수(자본가)의 노력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축적의 과정 속에서 힘겹게 노동한 대다수 민중의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그 결실을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필연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고병권은 말한다.  

   

“외견상으로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임금을 자본가를 통해 받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생산한 것을 자기가 지급받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사람은 노동자 자신인 겁니다. 개별적으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계급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하게 보입니다. 노동자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불자입니다.(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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