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41 : 비슷한 건 가짜다

쓴맛 10 - 마지막 유학자

by 김경윤

장자가 노나라 애공을 만났을 때, 애공이 말했습니다.

“노나라에는 공자의 뜻을 따르는 유자들은 많지만 선생의 학술을 닦는 사람은 적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노나라에는 유자도 적습니다.”

애공이 물었습니다. “온 노나라 사람들이 유자의 옷을 입고 있는데 어찌 유자가 적다고 하십니까?”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듣건대 유자가 둥근 관을 쓰고 있는 것은 하늘의 때를 안다는 표시이고, 모난 신을 신고 있는 것은 땅의 현상을 안다는 표시이고, 깨진 모양의 옥을 차고 있는 것은 결단성있게 행동한다는 표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군자가 그런 도를 안다고 꼭 그런 복장을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런 복장을 한다고 꼭 그런 도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의심스러우시면 나라에 명령을 내려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도를 알지 못하면서 유자의 복장을 하고 다니면 사형에 처한다’고 말입니다.”

이에 애공은 정말 명령을 내렸습니다. 닷새가 지나자 노나라에는 감히 유자의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유자의 옷을 입고서 궁궐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애공이 곧 그를 불러 나랏일에 대해 물어보니, 온갖 문제에 대하여 자유자재로 이야기하는데 막힘이 없었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노나라에 유자는 한 사람뿐이군요. 어찌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자방> 5


일단 역사적 사실 확인. 노나라의 애공은 기원전 521년에 26대 임금인 정공의 아들로 태어나, 기원전 495년에 정공이 죽자 27대 임금이 되었다. 애공 임기 동안 오나라와 제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고, 기원전 468년에는 노나라 귀족들인 삼환씨를 무력으로 다스리려 했으나, 오히려 패배하여 월나라로 추방되어 기원전 467년에 그땅에서 죽은 불운의 임금이다. 《논어》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는 공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니 결코 전국시대의 장자와 만날 수 없다. 말인즉, 위 에피소드는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 가상의 에피소드인 셈이다.

어쨌든, 공자가 활약했던 노나라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장악하고, 그의 뒤를 이어 주나라를 바로 세웠던 무왕의 동생인 주공의 업적으로 분봉 받은 나라다. 하늘의 올리는 제사는 원래 주나라에서만 허용되었으나, 주공의 업적이 드높아 노나라에서도 올릴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강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노나라 출신의 공자는 학문을 세움에 있어, 요, 순, 우, 탕, 문, 무왕을 성인 반열에 올리고, 주나라 창건에 큰 공로를 세운 주공을 학문적 스승으로 삼았다. 그렇게 정립한 학문이 바로 유학이다. 노나라는 유학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유학의 종주국이니 유자(儒子)가 많은 것은 당연지사. 애공이 장자에게 노나라에 유학은 성행하는데 도학은 적다고 말한 것 역시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런데 장자는 묻는다. 과연 유학의 도를 따르는 진정한 유자가 많은가? 입신출세를 하기 위해 유자인 양하고, 유자의 복식을 따른다고 진정한 유자인가? 격식과 복색이 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가? 확인해 본 즉, 진정한 유자는 없었다. 고작 한 명이 있었을 뿐이다.

니체는 《안티크라스트》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은 예수 한 명뿐이라고 말했는데, 딱 그 꼴이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유행을 따른다고 패션니스타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사상을 아는 척한다고 사상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법구경》에서도 염불을 외우고, 중의 복장을 하고, 걸식을 다닌다고 다 중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목숨을 빼앗겨도 포기하지 않는 ‘찐’은 그리 많지 않다. 어디 유자만 그렇겠는가.


<궁금>

그런데, 애공의 궁궐 앞에 선 마지막 유자는 누구였을까? 니체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혹시 공자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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