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칼럼쓰기 1 : 더 밑으로 더 가까이

2021.1.4. 고양신문 인터넷판

by 김경윤
민주주의는 청와대나 국회나 법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시작된다. 더 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는 “귀신이나 도깨비는 그리기 쉽지만 개나 말은 그리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귀신이나 도깨비는 아무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대충 그려도 그려려니 하지만, 개나 말은 누구나 보고 알기 때문에 대충 그려서는 잘 그렸다고 인정받기 쉽지 않다. 나는 이를 추상적 논의는 쉽지만 구체적 실천은 어렵다고 새긴다.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너무나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라 각자 말하는 바가 달라도 웬만해서는 비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려 한다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또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은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비판하기 쉽지만,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를 ‘일상민주주의’라고 말해보자.


부부간에, 부자간에, 형제간에, 한 마디로 가정 내에서 일상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어떻게? 더 나아가 마을에서 친구간에, 동료간에, 공동체원간에 민주주의는? 학교에서 교장과 선생간에, 선생들간에, 선생과 학부모간에, 선생과 학생간에, 학생들간에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직장에서 직장상사와 사원간에, 직원간에 민주주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민주주의는? 점주와 알바간에 민주주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인간들을, 그들의 성별, 연령, 지역, 국적, 종교, 학력, 지위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하는가? 나와 그들은 자유로운가? 박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가?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우선 내가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겠지만, 더불어 남들도 삶의 주인공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관계의 핏줄 속에 민주주의가 흘러야 한다. 내가 움직이는 모든 공간 속에 민주주의라는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 편히 숨 쉴만한 장소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심장은 민주주의로 맥동하는가? 우리의 두뇌는 민주주의로 작동하는가? 우리의 입술은 각자의 주인된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우리의 손은 민주주의 확장으로 위해 움직이는가? 우리의 발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멀리 갈 것 없다. 자신의 몸뚱이에서 만들어지는 동심원에 따라 민주주의는 퍼져가는 것이다.


높은 정상은 깊은 골짜기에서 생기는 것이다. 천리길은 한 걸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높은 이상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넓은 이념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거대한 광야를 불태우는 불길은 촛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내가 되고 강이 되고 비로소 바다가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나의 촛불을 밝히고 있는가? 작은 눈물방울이라도 만들고 있는가?


방송에서 신문에서 SNS에서 서로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은 가뭄에 말라버린 논처럼 민주주의 싹이 말라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민주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 사회는 허상이다. 나의 일상이 민주주의로 숨 쉬고 있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딴 나라 이야기다. 나의 가정이, 학교가, 직장이, 공동체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지 않는 한 행복이란 나비와 벌들은 날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핏발 선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돌려 옆사람을 바라보자. 남들을 비난하는 그 손가락을 접고 옆사람의 손을 잡자. 민주주의는 청와대나 국회나 법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시작된다. 더 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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