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쓰기 65 : 그래도 크리스마스

고양신문 인터넷판 2020.12.10

by 김경윤

기원전 4년쯤인가 로마의 식민지인 이스라엘의 나사렛에서 아기 한 명이 태어났다. 아비를 알 수 없는 아기였다. 출산의 시간이 다가왔으나 어떠한 숙소도 임산부를 받지 않았다. 결국 짐승들이 머무는 동굴에서 태어났다. 하느님의 아들, 찬란한 별, 동방박사 세 사람, 헤롯왕의 영아살해 등 여기에 덧붙여진 신화적 이야기가 없었다면 이 아기의 탄생은 가장 비참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 아기가 바로 예수다. 그 아기가 태어난 날을 12월 25일로 기념하고 있지만, 사실 그 아기가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 사람 아무도 반기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던 탄생, 동물과 같은 처지에서 태어난 아기, 그리고 신산한 노동자의 삶, 마침내 29살에 가출. 이 땅의 하층민중들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삶과 오버랩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희망 없는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고용, 혹은 임시고용 노동청년의 삶이 바로 예수의 삶이었다.

나라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가장 멀리 떨어진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청년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떠돌며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며 희망의 소식을 전하자,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로마제국마저 이 청년을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재판에 회부시켜 사형시켰다. 이 가난한 혁명의 시도는 길어봐야 3년이고 짧게는 1년 만에 종료되었다. 그러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이 청년 예수의 죽음을, 가난한 혁명을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고, 청년 예수의 삶을 계승하여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후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전국민이 난민의 처지가 되어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을 때, 예수가 주장했던 가난한 혁명의 비전도 퍼져나갔다. 미움 대신 사랑을, 지배 대신 섬김을, 군림 대신 평등을, 억압 대신 자유를 주장하는 이 위험한 사상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에게 복된 소식이 되었다.

예수의 탄생은 민중의 새로운 탄생을, 난민의 새로운 생활을 기억하는 축제와 같은 것이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무소유의 정신이,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는” 힘 외에 어떠한 권력도 부정하는 무정부의 정신이, “섬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섬기는” 무권력의 정신이, “진리를 아는 것”을 통한 자유의 정신이 예수의 탄생을 통해 이 세상에 뿌려졌다.

오늘날 교회는 타락하고, 성직자들은 인간 이하로 전락하고, 교인의 신앙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혀 왜곡되었다고 할지라도 예수의 탄생은 기념할만한 일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무너지고, 성직자들이 터전을 잃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할지라도 예수 탄생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마다 노동자 2400여명이 노동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죽고 있다. 12월 8일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은 549명이다. 코로나 사망자보다 산업재해로 죽은 노동자가 4배가 된다. 코로나에는 전국민이 힘을 합쳐 방비하는데. 산업재해에 대해서는 왜 눈을 감는가? 과로사하는 택배 노동자, 푸대접 받는 경비노동자, 그림자노동으로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은 그렇게 살기 위해 태어났는가? 그들은 어떠한 희망을 꿈꾸며 살다가 죽게 되었을까? 그들이 꾸었던 꿈과 예수의 꿈이 달랐을까?

그래서다. 민중들의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오늘 한 아기가 다시 태어난다. 그 탄생을 기억하고, 그의 꿈과 희망을 되살리자. 그 꿈이 결국 좌절되어도 그래도 골백번 메리 크리스마스다.



고양신문 링크 :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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