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작가마다 글을 쓰기 위한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합니다. 일종의 예열과정인데, 자신이 쓸 글감을 걸으며 이리저리 굴려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글감이 정리되어 글을 수월하게 쓸 수도 있습니다. 저도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나름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걷기를 잡생각을 없애면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준비과정으로 사용해야지, 걷기 자체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니체는 이러한 걷기의 신봉자였습니다. 그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작품은 질스마리아의 길을 걸으며 사유한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어떤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사전 예식과 같은 루틴을 반복합니다. 책상을 치우고, 커피를 내리고, 조용한 음악을 켜는 등 글쓰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지요. 마치 예배를 드리듯이 글을 쓰는 작가도 제법 많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소설가 김탁환도 작업실을 최적으로 만들어놓고 작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글쓰기 외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거지요. 문제는 이렇게 사전 예식을 치르다가 정작 글쓰기에 돌입하지 못하면 말짱 헛수고입니다. 그러니 사전 예식은 간출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쓰기 준비는 글쓰기를 위한 전초단계이지만 필수단계는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저의 경우는 글을 쓰고 싶을 때, 어떠한 단계도 거치지 않고 곧장 글을 쓰는 편입니다. 책상이 지저분해도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단도직입(單刀直入), 글쓰기로 곧장 진입합니다. 일단 쓰기 시작합니다. 쓰다보면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면 주변 환경은 의식되지 않습니다. 마치 전력질주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보면 주변의 거리가 터널처럼 휘어져 보이는 것 같은 효과와 비슷합니다. 글쓰기 외에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작가는 글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기다린다고 합니다. 전체 구성이 완벽하게 짜여지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술의 신인 뮤즈는 기다리는 작가에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신의 소리가 들리듯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영감이 떠오릅니다. 꾸준히 수행하는 수도자에게 해탈의 경지가 주어지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에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펜을 드는 것으로 족합니다. 펜과 내가 하나가 되어 같이 놀면서 글을 쓰면 됩니다. 분위기가 안 잡혀서, 아직은 정리가 안 되어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글을 쓸 수 없으면, 그가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변명만 쌓이고 작품은 쌓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어디에 있든, 언제든 펜을 드십시오. 그리고 공책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하십시오. 그 장소와 시간에서 세계를 만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