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자유는 한자로 自由라고 씁니다. 스스로 자(自), 말미암을 유(由). 말미암다라는 말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원인이나 이유가 되다.”라고 풀이됩니다. 글자로만 치면 스스로가 원인이나 이유가 되는 것이 자유(自由)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한다는 통속적인 뜻보다 깊고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스피노자는 노예와 자유인을 구분하면서, 자유인은 “나의 행동이 나 밖의 것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의 내적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도록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와는 달리 외적 원인에 따르면, 즉 남이 시켜서 행동하면 노예가 됩니다.
글쓰기에서의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내적 동기에 의해서 촉발되는 능동적 글쓰기는 쉽사리 지치지 않습니다. 과제물로 주어진 글쓰기와는 양상이 다릅니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해야만 하는 글쓰기는 죽을 맛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이유도, 어릴 적부터 스스로 원해서 글을 쓰지 않고, 억지로 시켜서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가장 내적이고 자발적인 일기조차 과제물로 검사를 받아야했으니 할 말 다한 거죠. 말문이 막히고, 생각의 길이 끊어지게 됩니다.
비록 작가의 글쓰기가 보이기 위한 글쓰기이기는 하지만, 그 출발은 언제나 작가 자신의 내적 동기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글쓰기의 정신은 ‘자기 정신’입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글쓰기를 배울 때 글쓰기 선생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이 “자기 자신이 되라(Be yourself)!”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 자신 되기’가 그리 쉽지마는 않습니다. 다른 것들은 박물지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 고대 아테네 신전 앞에 “너 자신을 알라”고 쓰여있어, 소크라테스는 평생을 이 경구를 삶의 모토로 삼고 살았지만, 소크라테스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가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겠습니까. 어찌되었든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아 살다가 죽었습니다.
노자 역시 <도덕경> 33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知人者智],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自知者明].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세고[勝人者有力],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自勝者强].” 글쓰기에는 많은 기능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기성찰’입니다. 행여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단견을 진리라 착각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확증적으로 반복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입니다. 외눈박이 시선으로는 남뿐만 아니라 자신조차 볼 수 없습니다. 글쓰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퍽이나 매력적인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항상 자유롭고, 자신을 아는 밝은 사람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