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부를 하다보면 체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문우(文友)들을 만납니다. 재미난 글을 쓰고 싶은데 인생에 재미난 게 없었다던가, 신나는 글을 쓰고 싶은데 신기한 경험을 못해봐서 못 쓰겠다던가, 멋지고 근사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자신의 삶이 멋지거나 근사하지 않아서 힘들다던가 하는 푸념들 말입니다. 물론 인생역전의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남들은 경험하지 못하는 드문 체험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좋은 글감인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글감만 좋은 글감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성만 들인다면 좋은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소재의 대소(大小)나 사건의 다소(多少)가 글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의 크기가 글감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의 시를 보면 작은 소재나 작고 사소한 사건이라도 엄청난 감동을 주는 시로 창작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수영의 유고작이 된 <풀>만 하더라도, 소재는 작지만 그 울림은 큽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라는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명구(名句)지요.
작가는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서 커다란 의미를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작가의 시선은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꽃의 시선, 벌레의 시선, 나무의 시선, 새의 시선, 개의 시선, 즉 만물의 시선으로 ‘시선 전환’이 가능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권정생 작가는 ‘강아지똥’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장자는 ‘물고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냈습니다.
노자 <도덕경> 34장은 크고 작은 모든 것에 깃든 존재[大道]의 깃듦을 노래합니다. 진정한 큼[大道]은 작은 것과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것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겸손한 품입니다. 삶이 아무리 사소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 작음 속에서 하늘을 품을 수 있습니다. 꽃들을 보세요. 작은 꽃 하나가 우주를 품습니다. 우주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하루도 자신의 품 속에 우주를 품고 사는 정성스런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작가는 그런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