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작가론 45 : 글쓰기의 티키타카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원고지 노자명상 1045.jpg

일상적 대화는 상대방을 필요로 합니다. 내가 말하면 상대방이 응수하고, 또 내가 말하고……. 쿵짝이 맞는다고나 할까요? 요즘 말로는 티키타카(tiki-taka)라고 하는데요. 원래 티키타가라는 말은 축구경기에서 사용되는 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 받는 축구 경기 전술에서 왔다고 하더라구요. 2006년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 튀니지 경기를 논평하며 스페인 방송인이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스페인어로 쓰면 tiqui-taca라고 쓴다네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이 티키타카를 잘 쓰는 연예인은 장소팔 고춘자가 떠오르고요. (너무 오래됐나?)


장난감 티키타카(나 어릴 적 딱딱이)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티키타카라는 장난감을 팔고 있는데, 영락없이 내가 어릴 적 갖고 놀던 ‘딱딱이’더라구요. 두 줄 끝에 나무공이 매달려 상하로 흔들면 위 아래로 딱딱 소리가 나던 장난감 말입니다. (이 또한 너무 오래됐나?^^)


말에서만 티키타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티키타카가 필요해요. 작가의 공간이 있다면 독자의 공간도 마련하는 거지요.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독자의 공감과 개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작가만의 소리로 꽉 채워진 글은 공감을 얻어내기 힘듭니다. 글을 읽으면서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작가의 말에 호응할 수 있을 때 살아있는 글이 됩니다.


티키타가가 없는 글도 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앞부분만 읽어도 뒷부분이 뻔히 상상되는 글, 인물이나 스토리가 너무 전형적이어서 안 봐도 본 듯한 글말입니다. 국뽕 영화를 볼 때, 뻔한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의 드라마를 볼 때 다 보고 나서는 하나도 남지 않는, 여운이 없는, 질문이 없는 그런 글처럼 맥이 탁 풀리지요. 그래서 요즘 세련된 드라마들은 하나의 해석으로 끝나지 않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요. 최근의 본 <오징어게임>만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를 보면서 각자 자기의 처지에서 다양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전세계 시청자들이 각자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열광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꽉 차 있지 않아서 뭔가 모자란 듯 하고, 다 말하지 않아서 뭔가 어눌한 듯 하고, 빽빽하지 않아서 뭔가 틈이 많아 보이는 글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는 이유는 독자들이 그 속에 개입하여 즐겁게 티키타카를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 다 쓰지 마세요. 글에 틈을 만들어 두세요. 모든 생명은 그 틈을 뚫고 자랍니다. 작가와 독자도 그 틈에서 즐겁게 서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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