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겁니까? 내가 모르는 당신에게, 나를 모르는 당신에게 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신비스런 일입니까?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데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니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모름을 기본값으로 해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모름이 없다면 결코 글쓰기는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 아는데 왜 글을 쓰겠습니까? 내가 쓴 글을 몇 편 읽었다고 나를 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지요? 내가 쓴 글을 읽었다고 내가 독자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 짓은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나를 모르는, 내가 모르는 그대를 향해 글을 씁니다. 나의 생각을 전하고, 나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내 글이 그대에게 가닿을지 모르겠지만, 가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해 만큼 오해가 생기겠지만 그게 어딥니까? 어차피 사람살이가 이해와 오해가 섞여 만들어지는 환상의 구조물이니. 그 환상의 구조물이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진실과 거짓을 잘 섞어, 고운 시멘트와 거친 모래에 물을 붇고 잘 개어서 단단하게 굳어질 때까지 나는 쓰고 또 씁니다.
설령 내가 쓴 글이 지쳐 더 이상 내 글을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주소지 불명으로 돌아온 편지처럼 다시 내 편지함에 넣고 또 나는 쓸 것입니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은 대화를 위장한 독백에 가까운 것일지 모릅니다. 대화체로 쓰는 것은 그 독백의 쓸쓸함을 살짝 거두려는 헛된 몸짓일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내 글에 답을 주시지 않는다고 낙담하지 않도록 마음을 굳게 먹겠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으십시오.”라고 썼습니다만, 그 또한 얼마나 불가능한 일입니까? 내 마음조차 잘 모르는데 독자의 마음을 어찌 안다고 저렇게 당당하게 써버렸을까요. “독자를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라고 썼지만 판단이라뇨?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신도 판단당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거울을 향한 손가락질은 반드시 거울에 비친 사람을 향한 것이니 알지도 못하는 당신을, 알 수도 없는 당신을 어찌 판단하겠습니까?
나의 삶은 완고하여 오늘도 이렇게 글쓰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만, 당신은 언제든지 글읽기를 멈추셔도 됩니다. 그대여, 평안하십시오. 내가 있든 없든 그대의 삶은 이어질 것입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한 때 내리는 소낙비라고 생각하십시오. 바람은 그치고, 소낙비는 멈출 것입니다. 글 따위는 잊어버리고 한끼라도 든든하게 챙겨드십시오.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과 달콤한 술이라도 한 잔 하십시오. 걱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늘 하루 깊은 잠을 청하십시오. 내일도 해는 뜨고 다시 하루가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