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마음으로 다시 쓰는 노자 <도덕경>
밖으로 글을 쓰려는 사람은 우선 안으로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밤새 썼던 연애편지를 아침에 다시 볼 때 창피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있을 겁니다. 그대로 보냈다가는 얼마나 후회막급일지요. 감정에 휘둘리거나 조급해서는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글쓰기에는 정성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정성의 처음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정성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와 정성스럽게 쓰는 글은 품격이 있습니다.
SNS에 글쓰기는 이와는 달리 신속성과 즉흥성이 기대는 바가 큽니다. 카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그때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배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댓글의 경우에는 감정이 날 것으로 드러나 민망한 글도 수없이 많습니다. 소위 악플이라 불리는 글쓰기는 익명성에 숨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재미를 즐기는 듯하기도 합니다. 영혼 없는 댓글도 보기 어렵지만, 악의를 품은 댓글은 정말로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어는 남에게 쏟아내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을 이루는 재료입니다. 오물과 가시로 뒤덮힌 집은 외부의 존재뿐만 아니라 내부의 존재도 더럽히고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에는 그 글이 우선 자신을 향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그러한 언어를 구사해도 괜찮은지 생각해 보세요.
더 나아가 기독교든 불교든 자신을 드러내는 선행을 금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빛내면서 남을 업수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품격은 자신을 낮추는 데서 드러납니다. 겸손이 품격이지요. 당연히 품격있는 글은 자신을 높이고 빛나게 하는 글이 아닙니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합니다. 아낌없이 주고,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거하는 마음이지요.
그러니 남에게 보이는 글은 조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操心)이란 말은 마음의 조종간을 잘 잡으라는 말입니다. 운전대를 놔버린 자동자는 반드시 사고가 나게 되어있습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다치게 합니다. 마음을, 글을 잘 운전하세요. 모난 글에 다치지 않도록, 날카로운 글에 베이지 않도록, 높은 글에 추락하지 않도록, 빛나는 글에 눈부시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