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작가론 62 : 위로와 힘이 되는 글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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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고통을 가라앉히는데 큰 쾌락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위로라도 큰 고통을 위무(慰撫)할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유가족들을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죽음에 반대되는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조용히 손을 잡아주거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건네는 것만으로 족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는 동정이 아니라 연민의 마음이 있습니다.


동정이 나와는 다른 상대방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면, 연민은 상대방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높은 위치에서 상대방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위치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선생의 용어로 말하면 ‘하방연대(下方連帶)’입니다. 상대방의 처지와는 동떨어진 사람은 결코 위로와 힘을 줄 수 없습니다.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에 단 글, 꿀이 떨어지는 글이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마음이 전달되는 글이 위로와 양식이 됩니다.


또한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을 쓰려면 가르치려는 입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위로와 힘은 유식(有識)과 무식(無識)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식은 정보전달에는 중요한 능력이지만, 위로와 힘을 주는 능력은 아닙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공감능력입니다. 지적 능력이 아니라 정서적 능력이지요. 머리에서 머리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의 과잉은 조심해야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보다 더 슬퍼하거나 크게 울면, 오히려 유가족에게 부담이 됩니다. 넘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위로와 힘이 되는 따뜻한 글이 감정의 과잉으로 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파가 돼서는 안 되는 거지요. 위로는 뜨거운 것이 아니라 따뜻한 것입니다. 적절하고 절제된 감정이 담기면 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산해진미가 아니라 빵 한 조각일 수 있습니다. 상처입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일류호텔이 아니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작은 공간입니다.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은 이렇게 작지만 따뜻한 체온과 마음이 전달되는 글입니다.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실함입니다. 가르침이 아니라 연대함입니다. 동정이 아니라 연민입니다. 큰 목소리가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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