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설 석영근 결혼식에 부쳐 - 2022년 2월 26일 11시 오펠리스
결혼은 고사하고 사랑마저 포기하여 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감히 용기를 내어 결혼을 감행하는 신랑 조윤설군과 신부 석영근양에게 경탄과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온 우주가 오늘 결혼식을 축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사랑하는 길벗들을 위해 주례사를 하려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결혼 30년차이고 아직 무탈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직업은 작가이고, 직장은 내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는 자유청소년도서관입니다. 저는 고양시에서 적지 않은 젊은이들과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딱히 가르치는 것은 없지만 저를 선생이라 부르고, 저는 젊은이들을 길벗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벗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이 자리는 제가 선 것은 스승의 자격이라기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벗이되, 나이가 많은 선배이자 벗이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길지 않게 두 가지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먹고 사는 이야기입니다. 뭐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고요. 평소에 우리 아이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집 가훈이 몇 가지가 있는데요. “하면 된다”의 반대말인 “아님 말고”이고,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수용하라는 막내의 요청에 따라, “그럴 수 있어”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가훈인 “국영수 말고 의식주”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이지요. 먹고 사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벌어 먹든지, 지어 먹든지, 빌어 먹든지 입니다.
벌어먹는 것은 남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면서 먹고 사는 방법입니다. 직장을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결국 상품성이 있어야 벌어먹을 수 있습니다. 평소 장모님 말마따나 ‘남의 돈 먹기가 쉽지 않’지요. 정성과 친절을 다하는 것이 첩경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의 돈 먹으려니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함께 고달플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방법을 주로 택하여 살고 있지만 이 방법만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어먹는 것은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사는 방법입니다. 농사를 짓든, 집을 짓든, 글을 짓든 생산적인 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아주 적은 사람이 이 방법을 택하여 살지만 살기가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팍팍하지요. 그래서 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삶의 조건을 소박하게 해야 합니다. 욕망이 많은 사람은 이 방법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빌어먹는 것은 남에 의존하여 먹고 사는 방법입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거지를 떠올리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의 존경을 받았던 예수나 부처 같은 성인도 이 방법을 택했습니다. 좀더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의 대부분의 시기를 이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태어나서 성장할 때가 우리는 부모에게 빌어먹고 삽니다. 그런데 빌어먹으려면 전제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랑의 색깔이 연민이 되었든 존경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사랑이 없다면 빌어먹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지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만 서로 기꺼이 의존하여 살 수 있습니다.
신랑신부가 같이 먹고 살려면, 이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배분하고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한 방법만 고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사는 곳 근처에 주말농장을 다니면서 기본적인 먹거리를 직접 농사를 지어먹습니다. 건강에도 좋거니와 생계비가 적잖이 절감됩니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주변 지인들에게 밥과 술을 사줍니다. 역으로 돈이 떨어지면 지인들에게 빌어먹습니다. 서로 빌어먹으니 부끄럽지 않습니다. 신랑 신부도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결혼은 상대방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타인을 동반자로 맞이하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라는 말이 참으로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낌’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아낌이 무엇입니까?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진부한 표현이지만 “당신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상대방을 아껴서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려면 내 손은 물을 잔뜩 묻혀야 합니다. 상대방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나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게 아낌입니다. 상대방은 깨끗하게 되고 나는 더러워지는 것, 상대방은 편하게 되고 나는 힘들어지는 것. 상대방은 모든 것이 되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상대방을 아끼려면 나는 아낌 없이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역설입니다.
아낀다는 말을 영어로는 ‘세이브’라고 합니다. 절약, 저축이라는 뜻이 있지만 구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신랑신부도 서로를 아끼고, 가지고 있는 것도 아끼셨다가 상대방을 위해, 이웃을 위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만 구원하지 말고,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사업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구원하고, 상대방을 구원하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합니다. 결혼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처럼 위대한 일입니다. 신랑 조윤설군과 신부 석영근양도 위대한 사람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기까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의 다입니다. 신랑신부의 앞날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인생에 기쁨만 있지는 않으니 슬플 때도 같이 그 슬픔을 깊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기쁜 날 우리 모두 박수로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복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