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독서노트 3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김용옥, 《용담유사》(통나무, 2022)

by 김경윤

인내천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권위의 부정이요, 모든 제도에 대한 항거이다. 우리 인류는 수천년 동안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많은 영웅적 인물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반역이니, 반란이니, 반도(叛徒)니 하는 팻말을 붙여왔다. 그리고 그들의 반역이 성공하면 역성혁명의 주인공으로 칭송하여 왔다. 그러나 신석기 혁명 이래 그 어느 누구도 수운과 같이 왕권을 넘어 신권에 본질적인 도전장을 낸 사람은 없었다. 니체는 신을 살해하려고 하였지만 수운은 신의 본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신과 인간에게 동일한 생명력을 부여했다. 전통적인 정치혁명은 국가의 해체에 이르지도 못했다. 단지 국가권력의 갊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운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혁명을 혁명시킨다. (25~26쪽)



명절연휴가 시작되는 벽두에 일어나 김용옥의 《용담유사》(통나무, 2022)를 읽는다. 수운(水雲) 최제우가 쓴 한글가사이다. 그동안 용담유사는 한글가사이기에 국문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졌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역사학과 철학적 의미맥락을 밝혀 김용옥이 현대어에 맞게 재번역하고 해석하였다.

김용옥은 이 책을 저술하기에 앞서 수운이 쓴 《동경대전》을 자세히 해설한 두툼한 책을 2권이나 출간한 적이 있다. 김용옥의 동경대전 출간은 종교계와 학계의 지난 학문적 성취를 종합하고, 그 역사와 논쟁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세상에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수운의 일대기라 할 수 있는 <대선생주문집>을 발견하고 자세히 주를 달아 해석함으로써 수운이라는 위대한 종교사상가이자 동학의 리더의 진면목을 여실하게 드러내었다. 아울러 <동경대전>의 역사적 판본을 그대로 수록하여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 되었다.

그 후속작으로 출간된 《용담유사》는 한문으로 쓰여진 《동경대전》과 같은 시기에 수운이 별도로 한글로 쓴 가사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동경대전》이 한문으로 쓰여진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을 향한 동학의 외침이었다면, 《용담유사》는 한문을 전혀 모르는 민중을 향한 애정의 포교문이다. 총 8개의 가사문을 역사적으로 쓰여진 시기순으로 배열하고 해설함으로써 수운의 심경변화와 동학포교에 대한 열망과 심려를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용담유사》를 구입한 것은 서점에 들러 다른 책을 사고 우연히 서가를 한 번 훑던 과정에서 발견한 후였다. 김용옥의 책을 예약하고 구입하던 이전 방식과는 다르게 《용담유사》와 만난 것이다. 시운(時運)인가? 그것도 지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날 구입하여 읽게 된 것이다. 2022년은 나에게 운명적인 한 해다. 나의 50대의 생을 마감하는 해임과 동시에 10년 넘게 운영하던 도서관이 마감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전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용담유사》를 만난 것이다.

새벽에 수운(水雲)을 만나며 나는 책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마치 동학교도가 된 듯, 인격적 스승을 만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일찍이 기독교도로 살아가며 수많은 허탈함을 느꼈고, 그것이 동양철학과 불교를 탐구하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동학을 접하고 깊이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열망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용담유사》가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의 경전은 예수나 부처의 직접 저술이 아니라, 제자들의 저술을 모은 것이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말하면 2차 저술이다. 그러나 《용담유사》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水雲)의 직접 저술작이다. 그가 남긴 1차 저술을 그의 후계자인 해월(海月)이 평생의 과제로 삼고 편찬하고 출간한 것이 《동경대전》이요 《용담유사》다.

게다가 기독교나 불교는 외래종교이기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배경지식을 습득하여야 한다. 하지만 수운의 저술은 나와 같은 풍토에서 자라고 성장한 종교지도자의 저술이기에 훨씬 친근하고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공부해온 기독교와 유불도가 그의 저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유쾌했다.

《용담유사》는 4․4조의 운율을 맞춘 가사형식이자 또한 편지글의 형식을 띠고 있다. 새로운 도를 얻을 때의 놀라움, 도를 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 가족에 대한 염려와 격려, 새로운 도의 핵심 내용, 이교도에 대한 경계를 담은 짧은 편지글이다. 편지글의 형식이니 더욱 친근하게 읽힌다. 마치 나에게 쓴 편지라도 되는 양 읽게 된다.


나는 여러분도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종교인 동학을 공부하기를 희망한다. 문명위기, 생태위기, 기후위기에 처한 지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구의 신학과는 다른 한국의 신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권한다. 우리 신학을 구성할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동학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는 동녘교회의 설립자인 홍정수 목사님의 대표적 저술 《베짜는 하느님》도 수운(水雲)의 제자인 해월(海月)의 언설에서 얻은 영감으로 지은 제목이다. 신년 공부의 시작을 동학으로 하자. 오른손에는 《용담유사》를, 왼손에는 《동경대전》을 쥐고 한 해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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