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인터넷판 (2022.4.28일자)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정리하고 성석동에 집필실을 얻었습니다. 13년간 운영했던 도서관을 접은 이야기야 말로 하자면 사흘 밤낮을 새워도 모자라지만 이제 그만하고, 대신 새로 얻은 집필실 이야기를 해볼까요? 갑작스레 도서관 공간을 정리하라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고양신문의 귀한 지면에다가도 하소연을 했더랬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지푸라기가 아니라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수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갑작스레 전화가 왔습니다. 고양신문 기사에서 내 소식을 접했다며 한번 만나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하더군요. 긴가민가하며 만났더니, 오래전에 전세를 주었던 옛집이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아예 이번 기회에 수리하여 들어가 살려고 하는데, 2층 창고로 썼던 다락방이 마침 비어있으니 들어올 생각이 있냐고 조심스레 묻더군요. 생각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월세도 파격적으로 제안을 해서 이게 사실인가 싶어 볼이라도 꼬집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쨌든 눈물겨운 도서관 정리를 마치고 친구집 2층에 책장이며 책이며 책상이며 온갖 집기들을 들여놓고 정리하니 제법 근사한 집필실이 꾸며졌습니다. 새로 도배도 하고 장판도 깔아서 그랬는지 새집에 입주하는 기분이었지요. 게다가 창고로 썼던 방인데도 창이 3개나 있어 채광도 훌륭했습니다.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2층 한켠을 얻어 근심 없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점이라면 사방 1킬로미터 이내에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점과 조립식 주택이라 지붕과 다락 사이에 공간이 별로 없어 외부의 날씨에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공간으로만 치자면 하로동선(夏爐冬扇), 여름에 난로를 때고 겨울에 부채질하는 셈인데, 지인에게 이를 털어놓았더니 “냉난방은 확실하네”라며 껄껄 웃더군요. 나도 따라 낄낄 웃었습니다. 사실 더우면 창문 활짝 열고 선풍기를 틀면 되고, 추우면 전기보일러를 켜면 해결될 일입니다. 편의시설 문제야 출근하면서 미리 사서 들고 오면 그만이지요.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가 이리 좋은 장소를 친구의 호의로 얻었는데 불평불만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다스려야 할 것은 내 마음속의 화기(火氣)와 냉기(冷氣)입니다. 계절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솟아오르는 화기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기가 냉기로 변하여 주변을 싸늘하게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아내보살님의 진단에 따르면 상황을 그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해석하는 못된 마음이 습(習)이 되어 생긴 병이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병이 깊어지면 약도 없다는데, 새로 생긴 작업실을 나의 수련처로 삼아 내 마음을 그대로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내 마음의 화를 다스리는 공간으로 이 더운 골방이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될 듯합니다. 외부의 화기로 내부의 화기를 다스려보겠습니다. 겨울이 되면 냉기로 냉기를 다스리며 한해살이를 해보렵니다. 창문 밖으로는 새소리 청아하고 꽃향기 그득합니다. 천지인(天地人) 모두 제 삶에 충실합니다. 나만 잘하면 됩니다. 내가 잘해야 됩니다. 마음 맑히고 눈 밝히면 세상은 고맙고 고마운 것들로 그득합니다. 나의 힘든 소식에 오랜 친구가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듯이, 주변에는 이미 나를 껴안고 사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