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정치판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강건체입니다. 장담하고, 주장하고, 비판하고, 강변합니다. 부드러운 언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톤도 날카롭고 피치도 높습니다. 소리도 엄청 큽니다. 하지만 일상의 언어가 강건체라면 우리는 아마도 숨도 쉬기 힘들 겁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는 좋은 거지만 매일 축제라면 지옥일 겁니다. 술집에서조차 옆자리가 시끄러우면 눈살을 찌푸리게 됩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데시벨은 20~30dB이고, 보통 음성은 65dB 정도라고 하니 이를 넘어서면 시끄럽다고 느껴지겠지요.
연인들의 목소리도, 위로의 목소리도 모두 나지막합니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마음을 열어줍니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글자야 소리가 나지 않지만, 글에서 풍겨 나오는 강도는 소리 못지 않습니다. 글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흘러야 편안하지, 딱딱하고 단단하게 굳어있으면 어색해집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강한 고함과 같은 글이 아니라, 부드러운 속삭임 같은 글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런 글을 공감의 글이라고 말합니다. 공감(共感, compassion)은 상대방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을 때, 따뜻한 온기와 맥박이 전달됩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같은 마음이라는 것만 전달되면 됩니다. 힘들다 말하면, 힘들지 되물어 보면 됩니다. 외롭다 말하면 손을 내밀며 외롭구나 반복하면 됩니다. 그런 문장을 쓰면 됩니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태를 항상 생각하면서 글을 쓸 때 우리는 공감의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공감의 언어는 생명을 살리는 언어입니다. 처벌의 언어가 아니라 용서의 언어이고,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 포용의 언어이며, 분노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입니다. 세상이 워낙 각박해지고 강퍅해지다보니 우리가 어느샌가 모르게 잊었던 언어들입니다. 상대방을 자르는 쇠의 언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스며드는 물의 언어입니다. 마른 논을 적시고, 더러운 것으로 마다 않고 가면서도 자랑조차 하지 않는 물을 노자(老子)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하의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 물만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도 물 이상이 없으니,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긴다. 천하 사람들 중에 이를 모르는 자가 없으나, 실천하는 자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부드럽고 여린 물이 강한 바위를 뚫듯이, 부드럽고 여린 문장이 닫힌 마음을 열게 합니다. 결국 작가가 도달해야할 문장의 모습이 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