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작가론 79 : 추앙과 환대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by 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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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작가가 극본을 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열혈팬으로써, 이번에 새롭게 방영된 <나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봤습니다. <나의 아저씨>의 두 번째 버전이라 할 만큼 형제지간(오누이지간)의 캐미도 대단했고, 이지안(아이유)의 남자 버전인 구자경(손석구)의 거친 듯 무심한 연기도 좋았습니다. 특히 이번 드라마에서는 평상시에 사람들이 쓰지 않는 어휘가 등장하여 나를 긴장시켰는데, 중반부터 등장한 ‘추앙’이라는 단어와 종방에 등장한 ‘환대’라는 단어입니다.


‘추앙’이라는 단어는 이미 세속적으로 낡을대로 낡아버린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단어로 등극했는데, 무조건적이며,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지 않고, 상대방의 축복만을 바라는 행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극중에서 염미정(김지원)과 구자경 간에 이루어지는 관계가 바로 ‘추앙’의 모습이지요. 결코 현실에서는 없을 것만 같은 새로운 유형의 사랑방식이라는 점에서 극이 끝나고 나서도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환대’라는 단어는 거의 종방에 등장한 단어인데, 염미정이 과거의 애인이자 자신에게 빚을 떠넘기도 떠난 전남친(선배)을 미워하다가 결국 복수가 아니라 배려를 선택했던 행동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미워서 죽여버리고 싶은 자에게조차 후하게 응대해주는 것이 곧 ‘환대’인 셈이지요. ‘추앙’이 연인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태도라면, ‘환대’는 원수지간에도 베푸는 후한 응대입니다. 마지막에 손석구가 자신을 배신하고 돈을 들고 튄 선배를 대신하여 자신의 돈으로 메꾸는 모습을 통해 환대의 극한적인 경우를 목격하네요.


길었습니만, ‘추앙’이 되었든 ‘환대’가 되었든 그것을 그렇게 행동하기로 결단한 사람의 단단한 자기애가 바탕이 되어야 된다는 점입니다. 자신에 대한 극진한 신뢰가 없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게 바로 추앙이자 환대입니다. 미움과 증오만으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에 그 정반대인 추앙과 환대를 선택한 두 주인공은 그렇게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렇기에 자신의 과거와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말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해방으로 힘겹게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의 글쓰기도 누군가(무언가)를 추앙하고 환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그를 높이고 사랑하는 일, 그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를 환영하고 대접하는 일. 그 추앙과 환대가 우리의 글쓰기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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