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모든 자살뉴스가 자살이란 말 대신 극단적 선택이란 말을 꼭 넣습니다. 자살이라 말을 못 합니다. 우리가 홍길동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고 충격을 줄이려 하고 자살이 민감한 주제라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다루기 위해서랍니다.
그럴 수도 있겠는데 자세히 보면 고인을 위한 배려는 없습니다. 자살한 사람을 위해 극단적 선택이란 말을 쓴 게 아니고 남은 사람들이 따라 할까 봐 남은 사람들이 충격받을까 봐 남은 사람들이 민감한 주제라 저렇다는 거죠.
극단적 선택(extreme choice)은 이란 말은 홧김에 어쩌다가 이런 뉘앙스를 가집니다. 자살을 술을 먹거나 약을 먹거나 어떤 충동적 상황에서 시도하기는 하나 그 큰 문제를 어쩌다가 한 순간에 홧김에 극단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없습니다. 미국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정리했다도 있습니다만 사실처럼 진실인 게 없습니다. 미국처럼 자살로 죽었다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처럼 "died by suicide" , "took their own life"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뉴스만 봐도 자살하려는 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구체적인 방법을 적거나 수단을 적는 것을 자제합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도 자제합니다. 이는 자세한 보도가 자살률을 증가시킬 수 있기에 자제를 요구하며 서로가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자살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보도규제라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권고 사항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사회적 책임보다 조회수 책임을 더 중요시 여기며 가이드라인을 가볍게 여기는 곳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권고 사항이니까요. 그래도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사건 보도 기사 아래에 미국처럼 자살 예방 핫라인도 적습니다. 그러나 죽고 싶어 도움 받으려 전화하다가 열받아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전화 연결이 안 됩니다. 그냥 112에 전화하세요. 그게 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