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의 안정형 되기 프로젝트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 방식이 최선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래도록 그렇게 생각했다. 각자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소통하면 된다고.
나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편하고 잘 맞는 방식을 찾으면 될 뿐,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했다.
첫째, 나는 변화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이미 지금의 방식으로 불편함 없이 살아왔고, 굳이 다른 방식을 배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니 정답이 있을 리 없다고 여겼다.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는 방식이 다르고, 나도 다르니 각자만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애착유형 테스트’ 하나가 그 생각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20년 가까이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큰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내가 회피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건 ‘안정형’이라는 존재였다. 마치 인간관계의 모범 답안처럼 제시되는 이 유형은, 굉장히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내 마음속에 반항심을 일으켰다.
'인간관계 방식에 정답이 어딨어. 나는 내 방식이 더 좋은데?'
그러나 동시에, 그 낯선 단어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떤 불안을 깨웠다.
내가 회피형 애착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인 순간, 그동안의 관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나도 달라지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싹텄다.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은 원래 아동 발달 심리학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존 볼비(John Bowlby)와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연구를 통해, 유아와 양육자 사이에 형성되는 정서적 유대가 이후 성인이 된 이후의 대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애착유형은 단순히 성격을 네 가지로 분류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관계 속에서 느끼는 친밀함과 거리감, 불안 등 정서의 뿌리를 설명해 주는 정서적 좌표라 할 수 있다.
1. 안정형
안정형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표현하며, 상대의 반응을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는다. 관계에 위기가 닥쳐도 ‘함께 풀어가자’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2. 회피형
회피형은 감정이 오가는 관계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친밀감은 곧 불편함이고, 그래서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솔직한 표현보다 묵묵한 침묵을 택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대화를 피한다.
3. 불안형
불안형은 반대다.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확인을 구한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지, 버림받지는 않을지에 대해 과도하게 민감하고, 작고 사소한 반응에도 큰 상처를 받는다.
4. 혼란형
혼란형은 이 두 가지가 뒤섞인 형태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거부당할까 두려운 마음이 공존한다. 그래서 가까워졌다가도 다시 밀어내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누구나 안정형이 이상적이고, 건강한 유형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동안 회피형으로 지내는 것이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관계는 그저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가까워지는 대신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여겼다. “어른이 되어가며 인간관계가 삐끗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굳이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흘려보냈다.
하지만 ‘안정형’이라는 단어가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내가 지금껏 선택해 온 태도가 단지 ‘겁쟁이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만약 안정형이라는 정답이 존재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방식은 그저 내 안의 불안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이었을까?
안정형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내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도 언젠가는 ‘안정형’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단,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성향이 아니기에, 나는 아주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했다.
감정을 조금 더 말로 꺼내보기,
갈등이 생겼을 때 한 발짝 도망치기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묻기,
관계에서 불편함이 생겨도 끊기지 않도록 천천히 이야기해보기, ...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 걸음씩 바꿔가자 관계도 변했다. 예전에는 쉽게 멀어졌을 관계가 조금 더 오래 이어졌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에게도 조금 더 마음을 열어주었다.
단단하고 건강한 연결이 가능하다는 걸 경험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그 다름이 오해와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소통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그 다름을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소통은 시작된다.
인간관계에서 ‘정답’을 발견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더 깊이 이해받고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고유한 소통 방식을 단단히 잡고, 서로에게 더 따뜻한 언어를 건네줄 수 있다.
나 역시 그 여정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글로 남기며, 언젠가 ‘나도 안정형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묻는다.
"오늘 나는 그 정답에 조금 더 가까워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