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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땡책협동조합 Nov 17. 2017

너는, 나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너는 나다>


어두운 새벽길,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다. 골목을 지나며 신문을 돌리는 그는 가던 발걸음을 멈춰서곤 한다. 그가 햇반 그릇을 가져가니 멀리서 ‘냐옹’하고 소리가 들려온다. 조심스러운 듯, 하지만 반가움이 온 몸으로 드러나는 길고양이가 어둠 속에서 얼굴을 보인다. ‘촵촵촵’ 열심히 사료와 캔을 먹는 녀석의 소리가 동네를 나지막이 울린다. 그렇게 오늘도 아침이 밝아온다. 조용히 속삭여본다. 우리 둘다 무사히 하룻밤을 보냈구나. 너는, 나다.                          

 

올해 5월 서울 알파갤러리에서 열린 <너는 나다> 첫 전시 당시의 사진


‘찰카기’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김하연 작가는 한겨레신문을 배달하며 길고양이 사진가로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 첫 전시 <화양연화>로 시작해 <구사일생>, 그리고 올해 봄부터는 길고양이들의 정면 컷으로만 구성된 <너는 나다>가 시작되었다. ‘알려야 바뀐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김하연 작가는 주6일 새벽 신문 배달을 하는 일과 속에서도 전국 어디든 관객들을 만나러 간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를 만들어 지역 참여예산을 받아 길고양이 보호소 설치 및 운영을 비롯, 매달 정기 강연, 길고양이 보호 관련 안내문 제작 등 활동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구사일생> 전시가 한참 이뤄지고 있을 때쯤, 그의 SNS에서 길고양이들의 정면 컷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 작가님의 다음 전시는 저 컨셉인가보군’ 싶었다. 길고양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각자의 사연이 저절로 읽힌다. 상처, 주름, 눈의 깊이... <화양연화>가 길고양이들의 아름다웠던 그때를, <구사일생>이 길 위의 처절하고 아픈 삶을 다뤘다면, <너는 나다>는 각자의 이야기, 그리고 인간을 닮은 그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고양이는 사실 온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영화 화면 갈무리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김하연 작가가 밥을 주는 관악구에 사는 길고양이들로 시작된다. 눈치 보고 살아야 하는 일상 속, 고양이는 의문을 가진다. ‘다른 나라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살까?’로 시작된 이야기는 일본과 대만으로 건너가 길고양이들의 다른 일상들을 그려낸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 부르며 멸시하는 건 한국 밖에 없다고함)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지점은,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마을’을 통해 해결했다는 것이다. 타 도시로 이주가 잦았던 내가 현재 사는 동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길고양이를 통해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였다. 밥을 챙겨주는 고양이가 생기니 고양이들의 동선이 궁금해지고, 마을의 지형을 파악하게 되고, 알고보니 밥과 물을 챙겨주는 집들이 꽤 된다는 것도 알게 되고, 밤에 개 산책을 시키러 나오는 주민들이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처음에 밥을 줄 때만해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훼방 놓으면 어쩌지’라고 겁을 먹었는데 그렇게 동네에 익숙해지고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최근에는 동네 고등학생들이 고양이들을 어떻게 돌봐주면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왔을 정도로 발전했다. 영화에 나오는 대만의 길고양이 엄마는 동네 지도를 그려 어느 고양이가 어느 장소에 주로 있는지, 그 고양이의 상태는 어떠한지 상세하게 표시해 놓았다. 선입견을 풀고, 서로 대화하며, 공존을 이뤄낸 일본과 대만의 사례는 여러 면에서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길고양이들과의 교감, 마을 사람들끼리의 공감이라는 힘이 만들어 낸 ‘마술’은 새로운 마을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매화와 벚꽃이 한창인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막내 고양이 레오가 다가왔다. 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밥을 달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물을 달라는 것도, 화장실 모래를 치워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문득 레오가 내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책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작가의 말’ 중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비롯, 지난 작품들에서도 아름답지만 우리에겐 조금 낯선 언어로 풀어내는 김중미 작가의 책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의 표지에는 한 소년 곁에 있는 고양이가 앉아 말을 걸고 있다. 이 책은 엄마를 잃은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은 소년 연우와 그의 곁으로 운명적으로 다가온 모리, 크레마, 마루 세 고양이의 각자의 시선으로 서로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개발을 앞둔 한 시장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사람도 쫓겨나고, 길고양이도 점점 자신의 구역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그려지는데, 서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재개발 예정지의 풍경과 상당히 비슷하다. 실제 고양이 집사 답게 고양이들의 습성과 신체 언어(몸짓)들을 김중미 작가가 아주 잘 표현하고 있어 그 슬픔의 감정들이 잔잔하면서도 애절하게 잘 스며들게 한다. 글을 읽다보면 결국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나의 인생 어느 순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양이는 속을 알 수 없다’는 불평을 종종 한다. 하지만 사실 고양이처럼 솔직한 동물이 없다. 다만 그들의 언어를 읽어내려면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마치 연우처럼 길고양이들에게는 이전의 문을 닫게 된 계기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연우는 처음에 고양이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알아듣게 되고 고양이들과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교감과 공감의 과정을 거쳐 그들은 비로소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김중미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통해 ‘순전히 말의 힘, 소통의 힘으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고양이를 잘 몰라도 우리 삶 어느 순간에 마주친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미리 예고드리지만 집사들은 엄청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책이니 미리 손수건과 휴지를 충분히 챙기고 보시길 권합니다;;;)          


차가운 바람, 누구도 보호해 줄 수 없는 골목에서 오늘도 마주친 너를 바라보며 속삭여본다. 

날 닮은 너는, 결국 나다. 



[함께 해보자냥!] 겨울철 동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방법      

                 

    

1) 자동차 시동을 켜기 전에 똑똑똑’, 시동켜고 5분후 출발

겨울에는 길고양이들이 자동차 내부에 들어가서 자는 경우가 있어요. 고양이의 몸은 워낙 유연해서 머리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추위와 바람을 피해서 차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하기도 한답니다. 출발 전에 똑똑똑, 노크를 하고 시동 걸고 5분 정도 후에 출발을 하면 자고 있던 고양이가 차 밖으로 나올 거예요. 차 안에서 듣게 되는 엔진소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리거든요. 노크로 한 번, 시동 소리로 다시 한 번 길고양이를 깨워주세요.  

    

2) 마실 물과 사료를 챙겨주세요 촵촵촵

‘우와, 저 고양이는 잘 먹어서 살이 많이도 쪘네?’ 아니예요. 그 길고양이는 사람이 먹다 버린 음식을 먹고 신장에 무리가 가서 부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특히 겨울에는 그마저도 먹을 만한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얼기 때문에 길고양이들에게 힘든 계절이랍니다. 봉지밥(고양이들이 뜯기 쉽게 얇은 비닐봉지에 사료를 넣은 것)이나 햇반 그릇에 물과 사료를 챙겨주세요. 사료를 주실 때 그냥 땅바닥에 두면 길고양이가 깨끗하게 먹을 수 없고 다 흩어져요. 그렇게 흩어진 사료는 길고양이가 미움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꼭 그릇에 챙겨주세요.        


3) 따뜻하게 지낼 집을 만들어주세요 갸르릉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임시 집을 만들어주세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티로폼이나 상자에 비닐을 씌우면 되어요. 집 안에는 보온 효과가 있게 이불이나 타올을 깔아주시면 더욱 좋아하겠죠? 사람들이 치우지 않게 집 위에는 ‘길고양이를 위한 집’이라고 잘 보이게 메모도 해주세요. 참고로 집 주변에는 먹이와 물 그릇을 두지 않는 것이 좋아요. 먹이와 물 그릇이 있으면 다른 길고양이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 글 도움 및 사진 제공_ 길고양이 사진가 ‘찰카기’ 김하연 님(http://blog.naver.com/ckfzkrl)      


* <너는 나다>의 이번 전시는 충북 옥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 2017.11.10(금)~29(수)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 옥천역 도보 3분
- 문의 043-732-8116 / 일요일 휴무 / http://www.facebook.com/doombung/      



All Night, All Right

땡땡책협동조합 친구출판사의 책들과 다른 문화예술 장르의 만남.

여러분의 깊은 밤은, 언제나 옳으니까요.     


글쓴이루카

집사 4년차. 2014년 동물학대 관련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다가 동네 버스터미널에서 구조된 아기 고양이의 입양공고를 지나치지 못하고 혼자 먹고 살기도 버거운 주제에 덜컥 입양했다. 지금은 식구가 늘어 줄리, 고석이, 솔라 세 식구를 모시고(!) 있으며 동네 고양이들의 밥엄마다. 길을 가다 멀리서 비닐봉지를 발견하면 ‘혹시 죽은 고양이인가?’ 싶어 일단 놀라고 보는 소심한 닝겐. 길고양이도, 인간도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는 오늘.



책 그날고양이가 내게로 왔다(2016)

낮은산 펴냄 ∥ 김중미 지음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016) 

감독 조은성 ∥ 나레이션 강민혁(씨엔블루) 

∥ 출연 김하연, 박선미 등 ∥ 러닝타임 90분


* 굿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영화를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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