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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땡책협동조합 Sep 28. 2019

‘밀양’이 우리를 다시 썼다

《밀양을 듣다》《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 리뷰

2019년 여름과 가을, ‘밀양’을 우리 곁으로 다시 불러오는 책 두 권이 출간됐다.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말’들을 담은 《밀양을 듣다》(오월의봄, 이하 밀양)와, ‘할매’로 표상되는 투쟁 주체들의 목소리와 내면을 다양한 미술 활동으로 담아낸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교육공동체벗, 이하 송전탑)가 그것이다. 

언뜻 봐도 매우 다른 성격의, 그러나 하나로 이어지는 두 책을 오가며 동시에 읽는 동안, 내 정신은 매우 산만했다. 두 책의 기획자이자 공저자인 김영희 교수가 스스로 지적하고 있듯이, 이 책들은 “‘산만한 구성’을 의도”했고, “목소리란 원래 이질적이고 다성적인 것이라는 생각”(밀양, 15쪽)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밀양’을 둘러싼 여러 주체와 여러 시간과 여러 장소의 목소리가 그야말로 뒤섞여 울리는 어떤 공간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그 목소리들은 내 목소리 역시 끌어내길 원했으므로, 나는 밀양에 얽힌 내 경험들을 죄다 끌어내어 하나로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당황했고 조금 침울해졌다. 기억들은 선후가 불분명했고, 인과 관계도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 작업을 포기할 수 있었다. 퍼즐을 정확히 맞추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목소리들의 숲에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선후와 인과, 그 직선의 서사를 넘어

     

‘밀양’이 내 의식 속으로 처음 뛰어든 것은 고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셨다는 기사를 보고서였다. 충격이었지만, 그것 자체가 나를 끌어당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윗옷을 벗고 맨몸으로 경찰 떼에 저항하는 할매들의 사진을 봤을 때, 나는 일단 밀양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은 아마 2013년 탈핵희망버스였을 것이다. 그 뒤로도 대여섯 번인가, 혼자 또는 일행과 함께 밀양에 갔다. 

문제는 이상할 정도로 이 기억들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이다. 장면과 내 감정들이 토막토막 남아 있을 뿐 하나로 꿰기가 쉽지 않다. 

나는 밀양에서 녹색당이라는 신기한(지금은 당원이 되었지만 첫인상은 그저 신기) 조직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봤다. 새벽에 단체 버스에서 내려 비탈진 산길을 오르고 올라 아마도 마을회관에서 잠을 잤다. 서울에서 최고로 많은 연대자들이 왔던 날 내 맞은편에 계셨던 어느 할매에게 내 초록 목도리를 둘러드렸다(목도리는 너무 길고 할매는 너무 작아서 다리까지 닿았던 것 같다). 움막을 침탈당하지 않기 위해 모둠을 짜서 산속 불침번을 섰고, 주민분들이 준비해주신 밥을 먹으면서 향이 아주 강한 ‘산초’라는 반찬을 처음 접했다. 행정대집행 전에 할매들이 파놓은 무덤, 목에 감을 쇠사슬이 늘어져 있는 그곳에 들어가서 할매가 들려주는 말을 휴대폰 영상에 담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이기도 했고, 지금은 절교한 어떤 친구, 혹은 옆에서 숨만 쉬어도 설렜던 짝사랑 상대, 좋아하고 존경하는 페미니스트 연구자, ‘밀양’ 외에는 아무 접점도 없던 당원들과 함께이기도 했다.

많은 얼굴과 말들, 소리, 냄새, 맛, 빛과 어둠으로 남아 있는 이 기억들을 순서대로 합당하게 배열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왜 밀양에 처음 갔는지, 그 후로도 몇 번이고 갔는지 이유를 정의할 수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나’들이 전부 나였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목소리들이 말해주었다. 몰라도 괜찮다고. 이 책은 밀양 송전탑 투쟁이 우리에게 선후와 인과가 명확한 ‘직선의 서사’ 그 이상임을 일깨운다.


“2012년도부터 2013년 초까지가 중앙 언론에도 몇 번 소개가 되고 했었지만, 이렇게 전국적인 이슈가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었거든요. (...) 2012년도에는 강정이 구럼비 발파를 하면서 강정 이슈가 전국적인 이슈가 됐고, 고 앞에는, 11년도에는 쌍용차가 처음 이슈가 됐었잖아요? (...) 2009년엔 용산참사가 있었고.”(밀양, 75쪽)


밀양이 왜 나에게, 우리에게 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밀양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너무도 명징하다. 자연과 생명을 위한 ‘탈핵’이라는 과제. ‘함께 살자’라는 권유. 우리가 전국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는 체감. 밀양을 정리해서 ‘직선’으로 잇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르게,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게 얽혀 있던 힘, 그것이 중요하다. 할매들의 시위 사진을 보고 밀양에 갔다고 하지만, 당시의 내가 회사에서 노조활동으로 괴로워하던 중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사진에 반응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누가 가르쳐준 적 없는 노조활동으로 나를 깊이 끌어당긴 것은 대체 어떤 힘들이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그 직선 아닌 “산만한” 힘들의 그물망 자체라고 할 만하다.


‘나는 ○○는 아니지만’의 전제를 넘어

     

《밀양을 듣다》가 거둔 가장 놀라운 성과는 소위 ‘당사자’, ‘활동가’, ‘연대자’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는 것이다. 모으기만 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놀랍지 않았겠지만, 앞서 말했듯 이 목소리들이 뒤섞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뒤섞이는 장소는 바로 ‘독자’ 그 자체다. 이 책의 독자(밀양 송전탑 투쟁을 알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던)라면 이 목소리들의 숲 어디에서고 자기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저는 회계학과였구요. (...) 근데 2011년도 3월 11일에 후쿠시마가 터졌어요. 그게 제가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그럼 회계학과, 상업, 이런 거 다 필요 없겠는데?’ 약간 이런 기분이 들어서.”(밀양, 65쪽)
“사회문제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밀양 이전에는 집회를 한번도 안 가봤어요.”(밀양, 81쪽)


활동가들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사회운동은 물론 사회문제에도 전혀 관심 없던 내 20대 중반까지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물론 나는 저들과 같은 ‘활동가’는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이 일깨우는 것은 바로 이 “나는 ○○는 아니지만” 너머의 세계다. 나는 활동가는 아니지만, 나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런 자아 성찰의 표시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그 너머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이 책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밀양 할매’는 자기 자신을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갈 ‘당사자’로 천명했고, (...) ‘밀양 할매’는 밀양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이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밀양에 거주하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여성 노인들이 주축이기는 하되, 그들과 함께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성장해온 연대자와 활동가를 아우르는 말로 쓰고자 한다.”(밀양, 13쪽)


‘밀양 할매’가 스스로를 ‘당사자’로 천명했다는 표현이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할매들이 자신들은 곧 죽으면 그만이지만 후손들은 어떡하냐고 부르짖으실 때, 그건 이미 자신을 당사자로 지목하고 싸움에 나섰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도 자연히 당사자가 되지는 않는다. 송전탑이 마을에 세워진다고 했을 때, ‘당사자’ 되기를 선택한 것은 바로 ‘밀양 할매’ 자신인 것이다. ‘할매’가 그렇다면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가 당사자의 목소리에서, 활동가의 목소리에서, 연대자의 목소리에서 자꾸만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지가 안 뽑히고 배기나


이 두 권의 책은 밀양 송전탑 투쟁의 역사를 여러 겹의 목소리로 전달할 뿐 아니라, 바로 지금의 목소리까지도 담고자 한 시도다.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 건설 재개 결정안이 무려 ‘시민 권고안’으로 최종 제안된 ‘공론화위원회’ 이후, 그 ‘시민’의 목소리 안에 결코 포함되지 못했던 ‘할매’의 목소리가 여기 차곡차곡 모여 있다.

지금 밀양을 이야기할 때, 찬반으로 갈려 파괴되어버린 마을 공동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여전히 밀양을 지키고 있는 활동가들의 절망도 직시해야 한다.


“이게 ‘진다’라는 개념 안에서 ‘내가 마이너구나’라는 생각을 한 게, 예를 들면 그런 거야. 제가 아무리 제 또래 친구들한테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하고 아, 뭐 할머니들이, 이렇게 해도, 뭐 그니까 감정에 호소해도, 거기에 감정…… 이입하는 사람들이……, (울음을 참으며) 음……, 한국에 되게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밀양, 236쪽)


울음을 참으며 꺼내놓는 ‘마이너’라는 단어와 거기에 ‘그니까, 그래서, 응, 그렇지’ 등으로 이어지는 활동가들의 대화에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다.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헤아릴 수 있다. 결국은 ‘소수’여서 ‘졌다’는 감각, 그 감각에 ‘할매’ 손의 온기가 더해질 때 무너져 내릴 마음 같은 것.



하지만 여기까지 읽고 먹먹한 상태로 잠시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를 펼쳤을 때, 나는 다른 의미로 넋을 놓고 붙잡혀 있었다. ‘할매’들이 그려낸 이 깊고 넓고 푸르른 세계 앞에 온몸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이걸 보고도 ‘할매가 졌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할매’들은 “아는 색이 마 풀밲이 없지” 하며 짙푸른 초록을 화면 가득 흐드러지게 칠했으며, 어쩔 수 없이 그려야 하는 원수 같은 송전탑 옆에는 그보다 더 크게 나무와 풀을 그렸다. 경찰보다는 왠지 “천막, 꽃, 밥그릇”을 그렸다. 다 똑같이 시꺼먼 머리통인 경찰들은 대충대충 그리고 소중한 연대자들은 “참말로 눈 코 입 참하게 잘” 그렸다.


“다들 송전탑 그릴 때 꼭 꽃이나 나무를 같이 그리시네요.”
“원래 거가 가-들 끼이까네. 원주인이 없으믄 안 되지. 송전탑이사 있다가도 마 금방 사라질 끼고. 꽃이나 나무가 진짜배기 땅 주인이지.”(송전탑, 155쪽)
“마, 언젠가 뽑힐 날이 안 있겠습니까? 할매들이 그카지요? 마 우리 살아생전에 안 뽑히도 상관없다꼬. 언젠간 안 뽑히겠냐고. (...) 들어서믄 안 될 기 들어왔는데 지가 안 뽑히고 계속 서 있을 순 없겠지요.”(송전탑, 165쪽)


이런 ‘할매’의 세계에서 우리가 진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원래 거기 주인이었던 땅과 하늘과 나무와 풀과 꽃에 비하면, ‘송전탑’, ‘지’는 때 되면 뽑히는 것일 뿐이다. 되도록 빨리여야 할 뿐이지, 뽑히는 건 뽑히는 거다. 송전탑이든 한전이든 거기 동조하는 국가권력이든 거짓 공약으로 당선된 대통령이든 간에,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이길 수 없다.

그리고 할매들이 이렇듯 송전탑이 뽑히고 ‘주인’이 원래 자리를 찾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 때문이다.


“데모하러 가던 길. / 그라고 그 길에 있던 나무. / 그 길 따라 쭉 가믄 산 / 산에 구름도 있고. / 그라고 그 길에 내가 있지. / 사람들이 있다꼬. / 사람들이 있으이 간 기지. / 혼자문 우예 갈 생각을 했겠노? / 엄두도 몬 내는 기라.”(송전탑, 226쪽)


엄청나게 산만하고 아름다운 두 책인 만큼, 짚어야 할 이야기가 훨씬 많지만 꼭 직접 만나보길 바라며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글을 시작하며 이 책들이 밀양을 다시 불러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밀양은 기억해야 하거나 잊을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밀양이 우리를 다시 썼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할매의 말들이 내 삶을 다시 썼다고. ‘할매 안 죽어’라는 말이 나를 살렸고, ‘온 국민이 다 일어서 디벼야 된다’는 말이 나를 ‘디볐’다. 눈앞에서 할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애매한 처지(곧 서울로 돌아가 머나먼 송전탑에서 건너온 전기를 써재낄 나)인 나는 울어선 안 된다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늘 실패했다. 그건 할매의 말들이 나를 애매한 처지가 아니라 당사자로 호출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뭣이 답답해서르 서울서 대전서 그 밤새도록 응? 차 타고 내려오가주고, 오는 길목마다 다 막으니까 응? 그 막는 길 피해 피해 가면서르 밤새도록 산을 헤매가 새벽에, 아침에 들오고 하는 거. 너무 감동적이잖아요. 그래가 끌어안고, 즈그도 울고 우리도 울고.”(송전탑, 216쪽)


할매의 말들이 우리를 불렀고 “뭣이 답답해”진 우리는 할매 곁으로 모였다. 그 역사가 우리를 다시 썼다. 그러니까 몇 번을 다시 말해도 부족하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지지 않는다.




양선화

온갖 분야를 싸돌아다니는 10년 차 편집노동자. 땡땡책협동조합 붙박이.


*<오늘의 교육> 52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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