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입주한 서울시 청년은 왜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나
오늘 아침 출근길, 난생처음으로 편의점에서 생수를 샀다. 지하철을 환승해야 하는데 목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지난밤 내내 '이제 이사는 어떡해야 하나' 뒤척인 탓일까. 주거지 상실에 대한 극심한 답답함이 기어코 육체의 갈증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취업하며 올라온, 대한민국 정책 기준상의 ‘청년’이다. 상경을 앞두고 내 가장 큰 고민은 '어디서 살아야 하나'였다. 한창 강서구의 억대 전세사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참이었다. 나보다 먼저 상경했던 고향 친구는 "전세금을 못 받아서 집주인과 소송 중"이라며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었다. 그 쓴 커피를 삼키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면, 전세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쥐꼬리만 한 사회초년생 월급으로 월세를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때, 뉴스에서 구명줄 같은 소식을 보았다. 서울시가 청년 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제공한다는 ‘역세권 청년안심주택’. 발령받은 직장 근처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울시가 주관한다는 점이 내 마음을 뉘이게 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청약에 매달렸고, 지인의 원룸에 한 달간 얹혀살며 버틴 끝에 기적처럼 '추추추추합'으로 당첨되었다. 드디어, 이 거대한 서울 한복판에 내가 두 발 뻗고 누울 안전한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 출퇴근길에 건물에 붙은 '청년안심주택'이라는 커다란 글자를 볼 때면 헛웃음이 난다. 진짜로 안심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굳이 이름에 '안심'이라는 단어까지 때려 박진 않았겠지. 역설적이게도 그 이름은 우리의 불안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포장지였을 뿐이다.
억 단위의 대출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서민의 자식이자 소득이 적은 나는 ‘청년디딤돌전세대출’을 받으려 했다. 연차를 내고 찾아간 직장 근처 은행, 물건지 근처의 주거래 은행들은 하나같이 "근저당 등 복잡한 요소가 많아 취급하지 않는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결국 입주 예정자들의 단톡방에서 정보를 얻어, 시행사와 협약된 은행을 찾아가서야 간신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은행 창구는 자본이 없는 청년에게 딱 그만큼만 친절했다. 직원은 내 연봉이 세전인지 세후인지도 묻지 않고 기계적으로 계산기만 두들겼다. 어딘가 씁쓸했지만, '서울에 10년 주거가 보장되는 집'이 생긴다는 기쁨으로 그 정도 불편함은 삼켜냈다. 계약서에는 HUG 전세보증에 가입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입주 후 6개월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서울시'와 함께하는 사업이니까 괜찮을 거라 굳게 믿었다. 낯선 서울 생활과 바쁜 직장에 적응하느라, 내 주거 문제의 이상 징후는 잠시 덮어두었다.
작년 2월 무렵, 청년주택 단톡방에 불이 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건물이 '강제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이었다. 확정일자보다 근저당 설정 일자가 빠른 세대도 있었다. 사회에 처음 내던져진 청년들은 우왕좌왕했고, 내 머릿속도 새하얗게 탈색되어 버렸다.
입주민들이 서울시에 상황을 알렸지만, 놀랍게도 서울시 역시 이 사태를 모르고 있었다. 청년들은 십시일반 돈을 걷어 조직위원회를 만들고, 단체 민원을 넣고, 시위를 했다. 집 앞에는 연일 지상파 뉴스의 취재 차량이 진을 쳤다. '저녁 뉴스를 보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이 아시면 어떡하지.' 부모님께는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고 그저 걱정만 끼쳐드릴 뿐이었다. 그 생각에 또다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국가와 지자체가 청년에게 주거를 지원하는 이유는, 젊은이들의 기반을 안정시켜 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함일 것이다. 그러나 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망이 흔들리자, 직장 생활을 포함한 내 모든 일상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기절하듯 잠들었지만, 내일 이 집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매일 밤 나를 웅크리게 만들었다.
사태가 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대책을 내놓았다. 은행과 협력해 청년들의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조례도 개정되었다. 살기 위해 다시 뛰어야 했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포털에 접속했다. 살면서 내 이름으로 누군가를 '피고'로 적어 소장을 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류를 접수하며 우리는 또 한 번 뼈저리게 우리의 '초년생 됨'을 깨달았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하려면 법원의 '접수증명원'이 필요한데, 이걸 떼려면 소송 신청 단계에서 아주 작은 체크박스를 클릭해야만 했다. 일상적인 일이었거나 누군가 한 번이라도 해본 일이었다면 당연히 눌렀을 그 버튼 하나를, 단톡방의 수많은 청년들이 놓쳤다. 다들 처음이니까.
직장에서는 어떻게든 내 한 사람 몫을 다하려고 아등바등 애쓰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거대한 시스템과 차가운 법 앞에서는 클릭 한 번 제대로 못 해 쩔쩔매는, 아주 작고 멍청한 존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귀한 연차를 쪼개어 은행, 주택정책과, 법원, 행정복지센터를 미친 듯이 오가며 나는 철저하게 닳아갔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건물이 강제 경매로 넘어가는 바람에, 다음 집을 구하기 위한 전세대출의 '목적물 변경'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당장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서울 하늘 아래 방 한 칸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새 전세대출을 받으려면 일단 주민등록을 옮길 '임시 거주지'가 필요한데, 본가가 지방에 있는 나로서는 갈 곳이 없었다.
서울시 공무원들과 소통하는 단톡방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여러분들의 어려움은 압니다. 하지만 형평성 때문에 어렵습니다."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직접 서울시 조례를 뒤졌다. 우리를 구제하겠다는 조례 16조의 2항에는 '긴급 임시주거 지원'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를 근거로 담당자에게 문의하자, 돌아온 것은 한 달 뒤 변호사의 자문을 거친 '법의 해석'이었다.
"당신은 서울시에서 제공한 은행과의 채권보전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따라서 당장 갈 곳이 없는 사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긴급 주거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목적물 변경에 대한 답은 없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답만 한다.
할 말을 잃었다. 법의 해석이라는 재량 아래, 행정의 책임이 얼마나 교묘하게 회피되는지 똑똑히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정리하자면 나의 상황은 이렇다.
서울시가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만든 '청년안심주택'에 적법하게 입주했다. 그런데 그 사업장이 경매로 넘어갔다. 서울시는 내 보증금 채권을 6월 말일까지 양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즉, 나는 6월 말일이 지나면 이 집에서 쫓겨나야 한다. 하지만 경매 사태로 인해 대출 목적물 변경이 막혀 당장 이사 갈 집을 구할 보증금이 묶여버렸다. 그래서 한시적으로 머물 '임시 거주지'를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거절했다.
도대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지옥 같은 어려움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세상이 원래 이렇게 복잡한 건지, 아니면 내가 시스템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국가를 순진하게 믿어버린 멍청이인 건지 모르겠다. 집문제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이 모든 상황을 들은 의사 선생님조차 황당하다는 듯 물으셨다. "세상에, 정말 그런 일이 있어요?"
6월 퇴거일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아직도 막막하게 직장 근처 부동산 앱만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쥘 수 있는 얄팍한 돈으로 갈 수 있는 안전한 집은 서울에 없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오세훈 시장은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민간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우리 사태에 대해서는 정부에 '재발 방지책'을 촉구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든 정책의 허점 속에서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은 외면한 채, 거시적인 공약과 겉보기에 유려한 재발 방지라는 단어 뒤로 숨는 것. 원래 이렇게 교묘하게 말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정치인가. 내일 당장 어디서 자야 할지 모르는 나는, 정치가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