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기로 했다

방전된 아빠의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는 법

by 카마스터 전대완

어느덧 육아 13년 차,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성장해 스스로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정말 손이 많이 갔다.

밥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전쟁이었다.

그중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건 다름 아닌 '아이들과 놀아 주는 것'이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이미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로 집에 오면, 나는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야 했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를 안아주고, 눈 맞춤하고,

비행기를 태워주며 들었다 놨다 하다 보면, 내 영혼까지 탈탈 털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진다.


"오빠, 10분을 놀아 주더라도 좀 제대로 놀아줘. 영혼 없이 그러지 말고."


그 말을 들으면 방전된 배터리에 잠시 점프선이 연결된 듯,

에너지가 강제 충전되어 억지로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점프선을 떼는 순간, 나의 자세는 펑크 난 타이어처럼 축 처지게 되고,

내 눈빛은 노랗게 변색된 오래된 헤드라이트처럼 초점을 잃고 흐려진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두 번째 퇴근 시간(육퇴)'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아이들과의 그 소중한 시간을, 나는 대부분 '방전된 상태'로 꾸역꾸역 버티며 보내버렸다.







'놀아주는 아빠'에서 '함께 노는 아빠'로


하지만 '감사하기'를 실천하면서 나의 육아는 엔진부터 달라졌다.


'아이들과 이렇게 놀이할 수 있는 건강함에 감사하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랑 놀고 싶어 하는 것에 감사하다.'

'나로 인해 아이들이 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것에 감사하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신기하게도 방전된 배터리를 쌩쌩한 새 배터리로 교체한 것처럼 에너지가 돌기 시작했다.

억지로 블록을 쌓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신나서 만든다.

아이들이 커서 같이 보드게임을 할 때면, 내가 이기려고 눈에 불을 켜기도 한다.


이제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논다.'

'놀아주는 것'은 노동이지만, '함께 노는 것'은 휴식이고 즐거움이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뒹구는 이 시간이,

노동이 아니라 나에게도 진심으로 즐겁고 소중한 힐링 타임이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육아가 갑자기 동화책처럼 평화로워진 건 아니다.

육아는 여전히 몸이 고되고 힘든 현실이다.

여전히 남매는 사소한 걸로 전쟁하듯 싸우고, 말 안 듣고 고집을 피운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다.

감사함이라는 연료를 채우고 나니, 내 마음의 그릇(배기량)이 조금은 더 커진 것 같다.

아이들의 투정이나 싸움도 예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나를 발견한다.


오늘도 나는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며 다짐한다.


"오늘도 신나게 한 판 놀아볼까?"




-해방의 문장-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써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선물'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육아는 노동에서 놀이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