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나는 아주 조용히 당첨되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복권이라는 건 원래 사람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데
정작 내 안에서는 숟가락 하나 떨어지는 소리만큼의 미세한 울림만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버튼 하나를
소파 아래에서 우연히 찾아낸 것 같은 기분.
“아,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놀람도 없고, 기쁨도 없고,
그저 세상과 잠시 맞춰지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의 감촉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점심 이후, 나는 의미 없는 산책을 하기로 했다.
실은 산책이라기보다, 그저 걷는 행위에 몸을 맡기는 쪽이었다.
가끔씩 그런 오후가 찾아온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발바닥이 스스로 길을 고르는 날들.
대개 그런 날엔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발밑이 갑자기 사라졌다.
정말로, 그냥 사라졌다.
조용하고 매끄럽게, 마치 누군가 리모컨 버튼을 눌러
나만을 위한 작은 함정을 열어놓은 것처럼.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추락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첨도 됐겠다, 오늘은 이상한 일 두세 개쯤 겹쳐도 괜찮겠지 하는
정체불명의 체념 섞인 여유 같은 것.
하수구 바닥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바람도 약간 돌고, 물소리도 나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사실 조금은 안락했다.
나는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사각형 틈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발끝이
리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
그날은 유난히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자동차 바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 위를 지나가는 모습이
어딘가 만화처럼 느릿하게 흘러갔다.
나는 문득 확률에 대해 생각했다.
태어나는 데 1,500만 분의 1.
로또 당첨에 800만 분의 1.
그리고 지금 이 하수구에 빠질 확률은…
도대체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
아마도 우주의 장난과 인간의 무심함이
교차하는 지점의 숫자일 것이다.
그 수식은 아마 어떤 천체 물리학자도 풀지 못하리라.
“확률이란 결국 아무것도 아니군.”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은 하수구 벽에 가볍게 부딪혀
나지막한 울림으로 되돌아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작은 생물들이
동의를 표시하는 것 같았다.
위쪽에서는 도시가 태연하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전화로 다투고,
누군가는 커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 나는 여기,
이 실존과 비실존의 경계 같은 공간에서
일종의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잊었다기보다
애초에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 같은 감각.
이곳에서 나는 묘하게 편안해졌다.
도시의 소음이 희미해지고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올바른 정도로 벌어지는 순간.
마치 잠시 다른 세계에 걸쳐 있는 셈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확률도 더 느슨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곳에서라면 나는
이미 지나온 인생의 여러 장면들을
다른 방식으로 재배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하늘이 밝았다가 어두워졌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나를 다시 위로 밀어 올린 듯한 순간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각형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하수구에서 빠져나갈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그건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확률은 늘 숫자보다 늦게 오고
인생은 늘 그보다 앞서 흘러가니까.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철제 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이 이상한 오후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하루키적인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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