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5일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 59분.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지 14년이 되어 간다. 중학생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도 70년대 후반 정도. 그전에는 신림동에 위치한 단독 주택에서 살았었다. 그 집에는 조그마한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누추한 공터가 있었던 것 같다.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것이, 내가 중학교 2학년때였나? 비가 올 때면 포장이 되지 않은 질척 거리는 길을 걸어 말죽거리로 가서 9번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었다. 그 이후로 서초동, 역삼동 지역의 아파트, 연립주택으로 여러 번 이사를 다녔는데, 한 번은 큰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잠시 살기도 했었다. 그 집 마당에 야채 텃밭이 있었고, 배추를 키웠다.
그때를 빼고는 내 청년기의 대부분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프레토리아에서도 결혼 후 아파트에서 3년간 살다가 마당이 있는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전 주인은 화원에서 일하셨던 혼자 사시는 아주머니였는데, 정원을 아주 예쁘게 가꿔놓고 사셨다. 나무도 많고, 꽃 들도 많은 그런 정원을. 나도 그 아주머니처럼 예쁘고 정돈된 정원을 쉽게 돌보며 가꾸고 살 줄 알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왜 쉬울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사 온 지 1년도 안되어서 정원은 '열대 우림'으로 변해 갔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정원을 '가꾼다며' 주말마다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나의 노동은 바다에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물 정도의 효과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나무와 풀들은 걷잡을 수 없이 자라서, '숲'을 헤치고 현관문으로 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정원일에 익숙지가 않아서 그런 것이려니, 계속하다 보면 일의 요령도 생기고, 좋아지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꾸역꾸역 정원 일을 했으나, 3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한계는 드디어 잉계점에 도달했다. 큰 나무, 작은 나무, 야자수들을 다 뽑고, 정원과 마당을 다 뒤집어엎어 버린 후 정원에는 관리가 편한 관목과 풀종류가 심어졌다. 그리고, 정원사 프란스 아저씨를 일주일에 한 번씩 고용하는 것으로 나와 정원과의 한 판 승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흙을 만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앉았다 일어섰다, 굽혔다 폈다, 그리고 뙤약볕은 내 등에 너무 강하게 내려쬤고, 풀을 뽑을 시간에 더 '가치'가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자본주의적인 사고가 한 술을 더하며, 나의 정원 일에 대한 열정은 식어져 갔었다. 그래도, 가끔은 '자연'을 접하며 살아야 한다는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은 생각과 정원이 있으니 정원에서 일을 해야 한 다는 강박감에, 한 번씩 정원에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던 중, 드디어 허리에 큰 무리를 주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일로 2주 넘게 물리치료를 받고, 나에게는 빨간 카드가 주었졌고, 정원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생겨 버렸다. 그 게 몇 년 전의 일이다.
다음 주에야 3월의 길목에 들어서는데, 벌써 가을의 잔잔한 햇볕이 잔디, 마당, 정원을 가득 채운다. 한국에서 느끼던 것과 같은 촉감의 가을 햇볕이다. 아침 일찍 거실 문을 열면 작은 새들이 잔디에 와서 입질을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정돈된 정원에서 보는 다양한 초록색들은 나의 눈을 편안하게 한다.
봄이 오면 일 년생 꽃들을 사서 여기저기 정원의 빈 공간에 심고, 물을 한 두 번씩 주는 것이 내가 지금 하는 정원일의 전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10여 년이 넘은 지금에야, 마음의 부담감이 없이 정원을, 마당을 즐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