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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켱 Apr 19. 2022

카페에서 이러고 있다

이런 작업자도 있는 법


집에서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다. 거실을 아예 작업실 공간으로 구축해놓았다. 크고 긴 책상에 모니터만 3대 (한 대는 정확히 태블릿이지만)가 올라간다. 이런 첨단 기계가 구축된 작업환경에 비하면 나의 생산성이 너무 낮아서 머쓱할 뿐. 아무래도 난 요즈음 절실하지가 않은 것 같다. (근데 왜 평생을 절실함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퍽 억울한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부귀영화 욕심이 많긴 하다.) 나도 그냥 대충대충 설렁설렁 살까! 이런 마음.)


만약에 내가 더 이상 작업자의 생활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몇 가지의 플랜들을 짜 놓았다.

자 한번 살펴볼까.


1. 다시 직장인이 된다.

- 이때는 남이 꼬박꼬박 주는 월급에 감사히 여기며 불만 없이 다닐 것.

- 회사 일에 큰 기대와 욕심 없이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서 워라밸 칼같이 지킬 것.

- 대출을 풀로 땡길 수 있다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차라리 재테크로 자아실현을 계발해볼 것.


2. 엄마의 만능 장을 사업화한다.

- 사실 이건 몇해 전부터 이모가 계속 탐내며, 하자하자 하던 것이긴 한데..

- 우리 엄마는 장금이 뺨칠 정도로 요리를 잘 한다. 이미 이 만능 장은 이모 뿐만 아니라, 삼촌들 외숙모 등등.. 주변으로부터 무한 신망을 얻고 있다. 이 장의 맛 위력이 어느정도냐 하면 함께 무얼 볶든, 천하제일의 별미로 만들어준다.(진짜 신기방기.) 이걸 사업화해보고 싶단 생각은 종종 했는데, 지금은 작업에 나의 온 여력을 다하고 있기에(진짜?) 멀티는 죽어도 못하는 나는 일단 내 마음 속의 차선으로 미뤄뒀을 뿐..

- 요즈음 같아선 차라리 사업을 해보고 싶다. 의외로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의 접점에서 농담따먹기도 하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걸 꽤 좋아하는 외향형 인물인지라, 혼자 동굴에 쳐박혀 내면으로 에너지를 쏟아야되는 이 작업자의 삶이란, 내가 꿈꾸는 작업에 다가갈수록 어쩐지 체질이 아닌 것도 같다.


3. 사서 공부를 해서 도서관 사서로서의 삶을 산다.

- 모든 일이 다 좋을 수만 없고 더럽고 치사한 점이야 있겠지만.

- 나이 들수록, 사서란 직업에 대해 되게 로망이 생기네..

- 무관하지만 러브레터의 한 장면 같은 거 기대해볼 수 있잖아.


이상.

작업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작업자의 망상 끝.


날이 풀려서인지 (별 이유를 다 갖다대려 한다.) 집에선 작업이 유독 되질 않는다. 원래는 집으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을 가보려다가, 어쩐지 도서관의 그 정적이 나에겐 너무 무거울 것이다란 두려움에 발길이 잘 향하질 않더라. 정적 숨막혀. 난 백색소음이나 사람냄새 적당한 카페 공간이 역시 맞다. 집 근처에 작업하기 괜찮은 카페가 하나 있다. 2층짜리 개인 카페인데, 좀 오래된 느낌은 있지만 자리도 넓직넓직한 것이 작업하기에 참 최적화되어 있음. 심지어 좌식 공간도 있는데, 일찍 집을 나서 이 좌식 공간(이 공간만 해도 테이블이 11개 정도..)을 어쩌다 홀로 차지하고 앉아있자면, 내가 웬 호사를 누리고 있나 싶을 정도로 황홀하다.


이 황홀함은 이 넓은 공간을 나 홀로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희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남들 일하느라 바쁜 대낮에 이러고 있는거 (나도 바쁘다.마음만) 왠지 정말 백수같고 괜찮달까. 누가 그랬던가 작업자는 백수와 (어떤) 노동자 그 어디즈음이라고. 그래서 작가는 나는 작가다란 믿음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아티스트(예술가)도 마찬가지. 나는 아티스트다-란 그 믿음이 중요하다고. 예전엔 -다운 결과도 없으면서 자기 혼자 -라고 믿고 공언하면 그게 맞는거냐 생각했던 나는, 그런 믿음과 공언이 의외로 꽤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예전의 나는 누군가의 몰입을 보며 자기객관화 없는 과한 자아즈음으로 치부하고 그것을 유치하고 사회성 덜떨어짐으로 매도하기도 했는데 정말 반성하는 부분. 그래 자기 인생의 마술사는 자기 자신인걸로~. (매직을 펼쳐줘..) 그러든지 말든지 뭣이 중헌디, 그런 자신이 행복하면 될 일. 행복은 객관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타인의 행복을 내 멋대로, 내 입맛대로 재단할 순 없는 거였다. 카페에서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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