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료함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왜 보러 갔었지?
다큐의 매력은 무엇일까? 군더더기 없다는 것이다. 다른 상업영화들처럼 더 많은 관람객을 동원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자극적인 효과를 넣을 필요도, 기상천외한 기승전결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깔끔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이다. 거기에 매력을 느꼈던 걸까?
보고 나서의 후기
재미없다. '로힝야' 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다. 이 다큐는 특별한 플롯이나 중심 캐릭터가 없다. 그냥 로힝야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거의 없고 대부분 픽스샷이다. 나는 약간 실망했다. 로힝야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지 않았고, 뭔가를 알고 싶어서 영화를 보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떠한 설명도, 자막도 없이 그냥 일상을 2시간 동안 보여주다가 끝난다.
자신의 삶을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해놓으면 어떤 장면들을 넣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을 듣고 '와 내 삶을 영화로 만들면 정말 지루하기 그지 없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의 삶이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면 다 그렇다. 자기 딴에는 힘들고 고되다가도 재미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카메라 렌즈로 비추어 보면 다 재미없이 살다가 가는 그저 그런 인생이다.
로힝야 사람들의 인생도 남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영화화 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특수성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지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다를 것이라는 추측은 틀렸다는 것이다. 로힝야 사람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덧붙이자면,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인구 110만명의 소수민족이다.
2012년 미얀마 서부 라킨 주민들과 로힝야 사이의 폭동이 일어났고, 로힝야 주민 수만 명은 집을 떠나 난민수용소에 살게 되었다. 로힝야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원인은 2016년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로힝야 무장단체가 경찰 초소를 공격해 사망자가 나오자, 미얀마군은 로힝야 전체를 대상으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
이러한 배경 탓에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로힝야 사람들을 피해자화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정말 평범한 로힝야 사회의 일상들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남자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고 놀기도 한다. 내가 영화를 보고 기억나는 소리는 카메라가 재밌다는 듯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여자는 밥을 짓거나, 옷을 만들었고 남자는 짐을 이고 어딘가에 가거나, 물건을 팔았다. 시장의 모습도 지극히 평범했다. 물건을 내놓고 멍 때리고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은 마치 내가 알바를 할 때 동태눈을 하고 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손님의 머리를 열정적으로 잘라주고 있는 미용사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모습도, 집에서 책을 소리내어 읽는 남자의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의 무난한 삶의 조각들과 닮아 있다. 물론, 꽤 충격적인 장면들도 있었다. 소를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이나 눈알이 빠진 남자가 손톱을 뜯고 있는 모습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모습을 특별히 부각하지는 않는다. 일상의 일부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영화는 짧막한 두줄의 자막과 함께 끝이 났다. 로힝야 주민들이 왜 난민 수용소에 살고 있는지에 관한 짧막한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재미없게 만든 영화 같았다. 엄청나게 평범한 일상을 엄청나게 긴 픽스샷을 통해서 담는다. 인터뷰도 없고, 등장인물들이 말을 하는 신들도 별로 없다. 카메라맨이 말을 걸지도 않고, 그냥 삶을 관조적으로 지켜본다.
다큐멘터리란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보고 다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다큐멘터리는 아는 만큼 보인다. 영화를 보기전 배경지식을 많이 알고 있을 수록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많아진다. 이 영화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다큐 감독은 관객들에게 특정한 생각을 강요하거나 길을 이끌지 않는다. 관객들이 알아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기에 많은 정보를 많이 알면 영상물을 보고 나만의 결론을 낼 수 있다.
두 번째로 다큐는 형식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Reality'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가 될 수 있다. 현실을 감추려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재미'와 '서사'는 방해되는 요소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다큐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다큐멘터리를 조금 재미있게 만들면, 사람들이 그 현안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게 영상물을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수단 중 하나다. '사회문제 고발'과 '현실 투영' 사이의 어디쯤 있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는 과연 사회문제를 공론화시키는 장으로 활용되어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감독의 서사 부여가 필연적이다.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