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없는 바른말
부모 : 너 이리 와 봐!
자녀 : 또 왜요?
부모 : 또? 또라니! 오라면 '네에'하고 오면 되지 '또'라니!
자녀 : 휴우..... 왜 그러는데요.
부모 : 너 어제 학원 늦었다며 왜 늦었는지 이야기해봐
자녀 : 친구들이랑 밥 먹다 보니까 늦었어요.
부모 : 밥을 얼마나 먹기에 학원을 늦어? 그리고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늦는다는 게 말이 되니?
자녀 : 손님이 많아서 밥이 늦게 나왔어요
부모 : 그러면 학원을 마치고 먹었어야지. 그걸 기다리다가 늦어? 생각이 있어? 없어?
자녀 : 배도 많이 고프고.... 그리고 15분 정도밖에 안 늦었어요
부모 : 15분? 지금 15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학원 시간도 약속이야. 그런데 밥 먹는다고 약속을 어기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자녀 : 그럼 밥도 먹지 말고 학원을 가요?
부모 : 누가 밥 먹지 말고 가래?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거지. 너 이런 작은 약속도 못 지키는데 앞으로 더 큰 약속들을 어떻게 지킬래? 약속을 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지켜줘야지. 그게 도리잖아!
자녀 : 휴우.... 알겠어요.... 앞으로는 밥 안 먹고 학원 먼저 갈게요
부모 :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밥을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거잖아. 작은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큰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거야.
자녀 :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부모 : 그만? 너 지금 내 말이 듣기 싫다는 거야? 내가 틀린 말해?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잖아! 부모가 바른말을 하면 좀 들어라! 삐딱선 타지 말고!
자녀 : 알겠다니까요
부모 : 너 지금 그게 알겠다는 말투야? 엄마가 틀린 말 한 거 있으면 이야기해봐! 이야기해 보라고
자녀 : 휴우.... 없어요
부모 : 난 틀린 말 안 해. 그러니까 엄마 말 좀 들어라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제가 무언가를 잘못하면 매를 드시기 전 약 1시간 정도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맞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들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바른말을 들으면서 반성이 되거나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화나게 했고, 짜증 나게 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이유를 설명해도 아버지의 바른말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하는 바른말은 저에게는 잔소리가 되어 버렸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리는 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회초리로 몇 대 맞고 빨리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제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한 번만 이라도 아버지께 이해받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바른말 안에는 저에 대한 이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바른말을 하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대는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그저 나의 행동과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강조하고, 반성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즉 바른말에는 상대를 이해하거나 존중하고자 하는 배려는 전혀 없습니다.
건조하게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찌르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거나 존중하려는 마음이 없이 하는 바른말은 상대를 아프게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바른말을 하기 전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공감’이라고 합니다.
공감이라고 하면 굉장히 전문적이고 어렵게 들릴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할 때 거의 한 학기 이상을 공감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감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공감은 전문적인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상대를 이해하려는 기본적인 마음만 있다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바른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으로서는 감추고 싶은 사실이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상대방 감정에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나 바른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상대를 얼마나 ‘공감’하느냐입니다. 먼저는 자녀에 대한 ‘공감’을 한 후 바른말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학원을 늦은 자녀에게 약속이라는 바른말을 하기 전에 배가 고팠을 자녀에 대한 공감이 먼저 일어난다면 좀 더 부드러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구나.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서 어떻게 해? 고생이 많다 우리 아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으면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 번 드려. 그래야 선생님도 걱정을 안 하시지. 그리고 밥 먹을 시간하고 학원 시간이 많이 겹치면 학원 시간을 옮기는 것도 생각해 보자. 계속 이러면 너도 불편하고 선생님도 불편하실 것 같네’
이렇게만 해도 자녀는 자신의 상황이 부모님들에게 충분히 이해받고 존중받고 있음을 알겠지요? 사실 학원을 늦은 자녀도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그 행동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공감 없는 바른말
‘바른말’에 강조를 두지 말고 먼저 ‘공감’에 강조를 두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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