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SS KIM Jun 03. 2017

다시 보는 원죄론

천국을 살다

내 맘에 "편견"이 자리하고 있으면,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속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가 된다. 사람은 수많은 편견들 속에 어떤 것이 그릇된 것인 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것이 "원죄"다.


 "편견"을 없애려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랑"에서 나올 수 있는 마음.


 "편견"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죄"라는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며 "자유함"에 가까워진다.  


 “공의”가 함께하는 “사랑”


 이것이 진리이다.
 세상을 멸망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는 모든 “편견”들을 단숨에 부숴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힘. “공의”가 함께하는 “사랑” 공의와 사랑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 누구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이를 수 없다.” 하셨다.

 내 맘속에 공의와 사랑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만연한 편견들을 깨뜨려 낼 수 없다.
내 맘속에 공의와 사랑이 존재하므로, 세상의 모든 편견들을 하나씩 깨어 나가, 태초에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감추어야만 했던 첫번째 "편견"의 상징인 나뭇잎마저 벗어버릴 수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 믿어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는 그저 '내 맘이 위로받고, 평안해진 상태'가 아니라,
그 어떤 편견에도 속하지 않게 되어, ‘세상 모든 사람과 생명과 물질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이 되어지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 것이다.


 비로소 에덴을 회복하게 되는 날.
그것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고, 갑자기 먹을 것들을 나타나게 하고, 십일조를 내서 몇십배 보상을 받게 되는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닮게 만드신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지극히 감성적인 “사랑”이 나타내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일에는 종교도 상관없고, 이념도 상관 없으며, 국경도 상관이 없다. 이것을 행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사랑”과 “공의”의 운행 가운데에 이미 “하나님”께서 자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 자체가 그 본체시니까. “염려치 말고 내어 맡기라”는 말씀은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사람을 위하는 길. 더 나아가서 세상 모든 만물들을 위하는 길.
그것이 곧, 인류 모두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 "좁은문"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아요. 당신은 천사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