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를 좋아했던 아이가 브로콜리를 먹지 않는다.
할머니 주말 농장에 놀러 가는 날.
뒷 목을 가리는 모자와 장화 그리고 물과 간식을 단단히 챙겼다. 우리는 아이와 주말농장을 자주 다니려고 노력한다.
사실은 이게 다 트니트니 때문이다. 트니트니 수강신청을 놓친 게 벌써 두 학기 째다. 잠깐 한눈을 팔면 접수 시간이 지나버려 이미 대기 15번째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고 나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트니트니에 간 아이들 사진이 줄지어 올라오고 그걸 본 내 마음에는 부채감이 쌓였다.
그래서 그 대신 주말농장을 간다. 흙냄새도 맡고 만지고 밟고 자연과 친해지라고. 아이는 아무것도 모를 테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트니트니 부채감이 조금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그곳은 아이에게 신기한 것들 투성이다. 여러 종류의 상추와 완두콩, 브로콜리, 감자, 고구마, 방울토마토, 옥수수가 줄지어 있다. 아이에게는 이 풀들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그냥 파란 건 풀, 부서지는 건 흙 이 정도이지 않을까.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브로콜리를 같이 땄다. 브로콜리는 매 끼니마다 찾는 최애 반찬이다. 브로콜리만 골라먹어서 아주 바람직한 편식이라고 생각했다. 주말농장에서 브로콜리를 따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는 브로콜리 위에 앉아있는 노린재를 봤다. 아직 아이의 세상 안에 벌레는 무당벌레 밖에 없기 때문에 아이는 '브로콜리 위에 무당벌레 이써' 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의 아빠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작은 벌레도 무서워하기 때문에 노린재를 치우는 것은 27개월 된 아이의 몫이다. 참나. 우리는 수확시기가 조금 지나 성인 얼굴크기만 한 브로콜리를 가득 땄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아이는 브로콜리를 먹지 않는다. 삶아 양념까지 한 브로콜리 반찬에 무당벌레가 있다는 것이다. 브로콜리 위에 노린재의 모습을 한 무당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깨끗하게 물로 씻고 삶아서 이제 벌레가 없다고 설명해 줘도 싫단다.
직접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눈으로 보고 만지고 수확하면 밥을 더 잘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바람이 부서졌다. 아 역시 아이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주말농장을 갔다 왔더니 그 좋아하던 반찬을 안 먹는다니. 이건 주말농장의 배신이다.
이렇게 어린 엄마는 또 하나 배운다. 주말농장까지 데려가는 건 나의 몫. 그리고 거기에서 보고 배우고 느끼는 건 너의 몫인 건가. 아니, 아이를 놓고 시나리오를 쓴 내 잘못인가. 어쨌거나 벌레가 나쁜 게 아니라는 건 알려줘야겠지만 아이는 내 예상대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낀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브로콜리와 다시 친해지겠지만 (이것도 나의 시나리오일까) '주말농장의 역습' 사건은 나의 아이 육아백서에 넣어 기억해야겠다.
주말농장은 브로콜리를 잘 먹던 아이가 브로콜리를 안 먹게 만들 수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배신감을 느낀 이유는 내가 만들어낸 '나의' 주말농장은 그런 일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주말농장은 아이가 흙과 풀을 만지면서 자극을 받아 뇌 발달이 충분히 되고, 뛰어다니면서 대근육 발달도 되고, 완두콩을 따면서 소근육 발달도 되는. 거기에 이렇게 채소가 자라는구나 하고 농부 아저씨의 수고에 감사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밥까지 잘 먹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나의' 주말농장에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나 보다.
나의 주말농장을 깨고 너의 주말농장으로 소유권을 이전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싶다. 너의 주말농장에서는 노린재가 싫어 브로콜리를 안 먹을 수도 있고 빨간 방울토마토가 아닌 초록 방울토마토를 딸 수도 있겠지. 그렇게 너의 주말농장이 완성되어 갈 때 나는 언제든 조언을 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나의 주말농장이 되지 않도록 '주말농장의 역습'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