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말이 없다.
내리는 대로 내린다.
잠잠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창문을 때리는 그 소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다.
세상에 기대지 않고,
세상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내려야 할 자리에 내린다.
비 오는 날엔 그런 고요가 있다.
바람은 멈추고,
사람들의 걸음도 느려지고,
세상은 잠깐 멈춘다.
그 정지된 틈 사이로,
생각이 들어올 여백이 생긴다.
그러니 그 시간엔,
무엇이라도 떠올려야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너의 방식,
요즘 자주 보는 사람의 말투,
그 사람이 너에게 남긴 기분.
어떤 감정이 오래 머무르고 있는지,
그 감정은 너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그런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사색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책상이 필요하지도 않고,
형광펜이나 필기도구도 필요 없다.
다만 조용한 시간과
스스로를 마주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
사색은 너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괜찮은가.
자신에게 떳떳한가.
살아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사람은 흔들린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날들은
생각 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주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내가 왜 그 일을 하는지 모른 채
지쳐 돌아오는 날들의 반복.
어느 날, 비가 오고, 창밖이 흐려지고, 모든 게 느려지는 순간
비로소 한 문장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깊이 생각하는 자는
자기 내면의 땅을 넓히는 사람이다.
그 땅이 넓고 깊을수록
외부의 것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말 몇 마디에 무너지지 않고,
세상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선다.
사색은 그 중심을 단단히 박는 일이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도
그 땅 안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중심은
매일같이 다져야 한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시간은
너를 너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잊게 만들고,
네가 뭘 견디는지도 헷갈리게 한다.
사색은 다시 너를 너에게로 데려오는 과정이다.
사색은 결국 너 하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너는 혼자 살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무너뜨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이
한 주를 버티게 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깨어지고,
사람으로 인해 회복된다.
그러니 비 오는 날엔
너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네가 외면했던 얼굴,
마음으로 닫아버렸던 관계,
무심코 흘렸던 말.
그 모든 것이
어떤 흔적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남았을지
고요하게 되짚어야 한다.
비가 내리는 그 시간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다.
만약 여유가 된다면,
조금 더 멀리 시선을 던져보라.
너를 감싸고 있는 사회,
이 나라,
이 민족에 대해서도.
사색은 너와 사회를 잇는 다리다.
생각하는 시민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다.
무관심 속에서 사라지는 정의,
경쟁 속에서 망가지는 연대,
그것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너는
네 삶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
비 오는 날에는 한번쯤 사색을 해라.
그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너를 위한 시간이다.
세상의 소음이 잠잠해진 틈을 타
너의 내면에 다녀오는 시간.
생각은 너의 자아를 확장시키고,
사색은 너의 중심을 다진다.
그 중심이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말도 너에게 닿지 않고,
아무리 넓은 세상도
너를 구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비 오는 날엔
너 자신을 만나보라.
너의 내면에서 무언가 울리고 있다면,
그것이 진짜 너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