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드디어, 말 많고 탈 많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녀왔다.
받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수리도 끝내고, 조립도 마치고, 마침내 바퀴가 돌았다. 네덜란드의 하늘 아래에서 내 딸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는 소식은, 이상하게 가슴을 울렸다. 학교까지는 4킬로미터. 사실 걸어다녀도 되는 거리다. 하지만 왕복 8킬로미터의 길은, 매일 걷기엔 녹록지 않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산책을 즐겨도, 어딜 가든 차나 지하철이 있었다. 몸으로 거리를 느끼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며칠동안 녀석은 늘 피곤해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그런 날이 며칠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은 요령이 생겼다. 다리에 근력도 붙었다. 숨이 차던 길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직 왕복 1시간 반은 벅차겠지만, 이젠 그 길 위에서 녀석이 스스로 버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사람은 걸을 때 생각한다. 자전거를 탈 때는 바람과 함께 생각이 흐른다. 그 길 위에서 딸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강 건너 운하를 보며,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정말 혼자서도 할 수 있구나.’
우여곡절 끝에 받은 자전거였다. 처음에는 배송이 지연되고, 부품이 빠지고, 심지어 조립을 하다가 실패해서 수리점에까지 갔다. 그래도 결국 해냈다. 돈을 들여 수리했고, 기어를 맞추고, 브레이크를 고치고, 마침내 자전거는 달릴 준비가 되었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성장이다.
녀석은 토요일에 시험주행을 하겠다고 했었다. 학교를 굳이 주말에 갈 필요가 있을까 물었다. “평일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고, 속도도 빨라요. 저는 아직 미숙하니까 주말에 연습해볼래요.” 그 말에 웃음이 났다. 겸손하고 현명했다. 이 녀석, 세상 요령을 배워가고 있다.
학교에 도착했다며 사진 한 장이 왔다. 캠퍼스 앞, 로스터 아일랜드의 간판이 선명했다. 작년, 둘째가 같은 자리에서 찍었던 사진과 같은 구도였다. 사진 속 배경은 같았지만, 주인공은 달랐다.
사진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사진 구도 때문인지, 자전거가 더 작아 보였다. 마치 인형용 자전거처럼 귀엽고 어색했다. 그 작은 자전거 위에, 이국의 도시를 달리는 내 딸이 있다. 어떤 거창한 상징보다, 그 사진 한 장이 유학생활의 단단한 시작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3년간의 학부생활을 함께할 자전거다. 비 오는 날도, 눈 내리는 날도, 그 자전거와 함께 다닐 것이다. 펑크가 나면 다시 고치고, 체인이 끊어지면 다시 연결하며, 녀석은 그 과정을 통해 세상과 부딪히는 법을 배워갈 것이다.
삶이란 결국 그런 반복이다. 고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일.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작은 자전거가, 앞으로 아이의 발이 되어줄 것이다. 그 자전거가 굴러가는 만큼, 아이의 세상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학교까지의 4킬로미터는 단순한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훈련의 시간이다.
처음 혼자 두 손을 놓고 달리던 그 순간의 자유, 바람을 가르던 두근거림, 그 감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 남는다. 딸에게도 그 첫 바람의 기억이 생겼으리라.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겠지. 운하를 따라 달리며,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오렌지빛 석양이 창가에 걸리는 길. 그 길 위에서 딸은 혼자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자전거가 있고, 하늘이 있고, 그리고 자신이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언젠가 귀국할 때, 그 미벨이는 어떤 모습일까. 페달이 닳고, 프레임에 흠집이 나고, 스크래치가 여기저기 생겨 있겠지. 그 모든 흔적이 성장의 자취가 될 것이다. 이국의 하늘 아래서, 딸은 오늘도 미벨이를 타고 달린다. 그 길 위에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배워가고 있을 것이다. 바람과 속도의 사이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