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위트레흐트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보내왔다. 돌로 된 바닥, 예쁜 가로등, 붉은 기와를 얹은 네 층짜리 건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전형적인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위트레흐트의 풍경이었다. 햇살이 낮게 깔리고, 구름이 건물의 꼭대기를 스치며 흘러가는 그 사진은,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사진 속의 공기는 맑고, 그림자는 고요했다. 사람들은 느릿하게 걸었고, 돌길 위에 비친 오후의 빛은 오래된 시간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그리 이뻐 보이지 않던 풍경이, 위트레흐트에서는 달라 보였다고 했다. 아마도 대도시의 무심함 속에서는 어떤 정취도 쉽게 사라지는 법일 것이다. 암스테르담은 이미 세계 속의 도시이고, 수많은 관광객과 학생, 자전거와 소음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공간이다. 반면 위트레흐트는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느리다. 바람이 천천히 불고,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그곳에서는 조금은 따뜻해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스마트폰 화면 속의 작은 도시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녀석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돌길을 걷는 발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카페 앞에 걸터앉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그 풍경 속에서 녀석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다행이라고 느꼈을까.
유학생의 삶은 낭만보다 현실이 더 크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혼자 시험을 준비하고, 언어의 장벽과 싸우며, 타국의 냉정한 공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 그것이 낭만의 이면이다. 우리는 흔히 외국 유학을 ‘경험의 확장’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외로움의 연습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스스로를 다잡고, 무너질 듯 견디며 하루를 살아내는 일.
첫째는 이번 주에 있을 기말고사 준비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이번 주는 패밀리 컨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통화를 하지 않겠다는 그 말에 잠시 마음이 쓸쓸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시험을 앞둔 아이는 세상의 어떤 말보다 침묵이 필요하다. 응원조차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만 응원했다.
첫째가 외국에서 보내는 사진을 통해 나는 조금씩 배운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것,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고독까지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 아무리 멋진 도시라도, 혼자 걷는 밤길은 차갑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걸어야만 어른이 된다는 것.
그 사실을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한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계획을 세우고,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불안이 언젠가는 확신으로 바뀔 것이고, 그 외로움이 언젠가는 단단함으로 변할 것이다.
아이의 젊은 날이 그 모든 것을 품고 자라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위트레흐트의 사진을 다시 본다. 그 돌바닥 위로 비친 햇살을 따라, 아이의 발자국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 발자국이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다만 그 길이 따뜻하길, 그 끝에서 아이가 웃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