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기숙사 풍경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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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공기가 느껴지는 날이었다. 한국은 추석 연휴라 거리는 들뜬 기운으로 가득했지만, 암스테르담의 하늘 아래 첫째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녀석이 보내온 사진 속엔 흐릿하게 구름에 걸린 달이 걸려 있었다. 하늘은 푸르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그 아래로 암스테르담 대학 사이언스 파크 캠퍼스의 건물들이 낮게 펼쳐져 있었다. 고층 건물이 없으니 시야는 시원하게 트였고, 먼 곳까지 이어진 지붕들이 이국의 정취를 만들었다.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 안엔 고독과 차분함, 그리고 조금의 피로가 섞여 있었다.



첫째는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송편을 빚으며 웃고있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네덜란드는 공부의 냄새로 가득했다. 녀석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는 부모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에게 자신이 잘 지내고 있음을, 그저 하늘을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짧은 마음이 느껴졌다.



사진 속 하늘은 말이 없었지만, 그 하늘을 올려다본 아이의 마음은 전해졌다. 혼자서 공부하고, 밥을 챙겨먹고, 빨래를 돌리고 하루를 쌓아가는 시간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부모에겐 그 하나하나가 성장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이번엔 자전거였다. 통학용 자전거를 주문해 직접 조립 했다. 설명서를 들여다보고, 부품을 끼우며 몇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도 잘 안 되어서 결국 자전거 수리점에 갔다. 한국에 있었다면 내가 해줬을 일이다. 펑크가 나면 내가 고치고, 체인이 빠지면 내가 끼워줬을 일이다. 하지만 이제 녀석이 스스로 하고 있었다.



이런 게 유학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책으로 배우는 공부가 아니라, 혼자서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장난 자전거를 밀고 나가 수리점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야말로 진짜 배움의 길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에 부딪히며 단단해지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것이 낯선 땅의 학교가 가르치는 가장 큰 수업일지도 모른다.



창밖의 달은 녀석에게 어떤 위로를 건넸을까. 시험공부로 지쳐 눈이 아프고 손끝이 시려울 때, 그 달은 아마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걸려 있던 그 달은, 마치 먼 나라의 부모가 보내는 안부 같았다. “힘들지? 그래도 잘 하고 있구나.” 그 한마디가 달빛에 스며 있었다.



그 시각 한국의 집은 분주했다. 친척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득했고, 식탁 위에는 음식과 다과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식탁의 빈자리에 첫째가 앉아 있는 듯, 아니, 그 빈자리가 그 아이의 자리인 듯 느껴졌다. 문득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다시 보았다. 달이 걸린 하늘과 낮은 건물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넓은 공터. 그곳 어딘가에 녀석이 있을 것이다. 창가에 앉아 라면을 끓이거나, 노트북을 펼쳐 시험공부를 하거나, 잠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식이 멀리서 밥을 잘 먹고 있는지, 하늘을 보고 있는지, 그저 사진 한 장으로도 마음이 흔들린다. 거창한 말 한마디보다 그저 “나 여기 있어요”라는 작은 신호 하나면 충분하다. 그게 자식이 보내는 사랑의 방식이고, 부모가 받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제 녀석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기말고사는 냉정하다. 낙제율이 높기로 유명한 대학이다. 녀석도 알고 있다. 가을의 밤공기가 싸늘하게 스며드는 기숙사 창가에서, 노트북 불빛에 의지해 문제를 푼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저 바란다. 점수가 어떻든, 잘 해냈다고. 그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가을밤의 달빛 아래,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부모의 걱정은 여전하지만, 그 걱정이 이젠 자랑으로 바뀌어간다. 유학생활은 그렇게 익숙해지는 법이다. 낯선 도시의 하늘 아래서 스스로 밥을 짓고, 자전거를 조립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 그것이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가을은 그렇게 저물어 간다. 한국의 명절은 끝나고, 달빛은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의 밤하늘 어딘가엔 그 달빛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아래에서, 첫째는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멀리서 그 하늘을 바라본다. 달빛은 똑같이 우리에게 닿는다. 서로 다른 나라의 하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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