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나를 많이 닮았다. 성격적으로도 그렇고, 생활습관에서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돈을 쓰는 태도에서 그렇다. 둘째는 절대 비용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장을 보러 갈 때도 그냥 카트에 담는 법이 없다. 늘 가격표를 꼼꼼히 살펴보고, 같은 품목이라도 어디가 더 저렴한지 따져가며 사는 스타일이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대형 마트인 알버트하인(Albert Heijn)은 우리나라의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존재다. 대부분의 유학생이 이곳을 애용한다. 둘째도 알버트하인 단골손님이다. 그런데 그냥 단골이 아니라 ‘알뜰 단골’이다. 보너스 카드를 만들어서 매번 할인 혜택을 챙기고, 앱에서 제공하는 쿠폰을 확인하면서 장을 본다. 자기만의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오늘 이거 할인 받아서 2유로 아꼈다” 하며 사진을 보내오면, 부모 입장에서는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하다.
사실 네덜란드의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높다. 단순 비교로 1인당 GDP가 한국의 1.5배 수준이다 보니, 전반적인 생활비도 그만큼 비싸다. 특히 유학생들에게는 주거비와 교통비가 큰 부담이다. 기숙사를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매년 전전긍긍한다. 살인적인 렌트비는 감당하기 어렵고, 대중교통 비용도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선택한다. 자전거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생존 전략이 되는 이유다.
인건비가 높다 보니 식당과 카페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음식의 질이나 서비스 수준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라면 “이 정도면 1만 원 하겠다” 싶은 메뉴가 네덜란드에서는 2만 원, 3만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러니 유학생 신분으로 외식이나 카페 문화를 즐기기란 쉽지 않다.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유학 1년 동안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다. 라면과 밥, 직접 해먹는 요리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집사람은 가끔 안쓰러운 마음에 “시험 끝났으니 맛집이라도 한 번 가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둘째는 혼자 가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고개를 저었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녀석에게는 식당의 문턱이 너무 높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 둘째가 유학 초기, 학교에 처음 갔던 날. 학교 근처 카페에 들렀다고 했다. 아마 새로운 환경에서 긴장도 되고,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때 남긴 사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둘째는 핫초코를 시켰다. 그리고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함께 주문했다.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핫초코와 샌드위치, 그리고 수줍게 찍은 사진 속 분위기는 그 자체로 귀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후덜덜한 가격 때문에 다시는 가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쉽기도 하고, 동시에 기특하기도 했다. 돈의 가치를 아는 아이, 절약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스스로에게 보상을 줄 줄 아는 아이. 그 균형이야말로 유학생활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녀석이 암스테르담에 정착을 하고 직장인이 된다고 해도 아마도 지금처럼 짠순이 기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그제야 학교 근처 카페에도 들르고, 친구들과 함께 식당에도 가며 새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비싸다”며 돌아섰던 문턱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아마도 둘째는 여전히 장바구니 물가를 비교하고, 알버트하인 보너스 카드를 들고 다니며, 오늘 몇 유로 아꼈는지를 계산하며 뿌듯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멀리서 그 소식을 들으며 안심할 것이다. 아이가 씩씩하게, 그러나 현명하게 이역만리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