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로 인한 도로 통제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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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은 의외로 마라톤 대회가 많다. 사실 네덜란드 하면 흔히 자전거의 나라를 떠올리지만, 막상 살아보니 자전거만큼이나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가와 운하를 따라 잘 정비된 달리기 코스, 공원마다 조성된 러닝 트랙, 그리고 사계절을 막론하고 뛸 수 있는 날씨 덕분인지 마라톤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문제는 이런 대회가 생각보다 자주 열린다는 것이다. 단순히 1년에 한두 번 있는 것이 아니라, 규모와 성격을 달리한 대회가 거의 매달 열리는 것 같다. 풀코스 마라톤, 하프 마라톤, 10km, 혹은 기부를 위한 작은 러닝 행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 주말이면 도심 주요 도로가 봉쇄되고, 다리나 광장이 통제되는 일이 흔하다.



둘째는 주일마다 교회를 간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매주 정해진 시간에 길을 나서지만, 암스테르담의 잦은 마라톤 대회는 그의 일정에 종종 혼란을 준다. 처음에는 제시간에 도착하려 했는데, 코스가 통제되어 교회까지 갈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억지로 돌아가려 했지만 길이 계속 막히다 보니 결국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처음 겪었을 때 둘째는 당황했고, 심지어 화까지 냈다. “왜 이런 중요한 일정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거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은 그에게 또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심 주요 도로가 막히는 것은 곧 마라톤이 있다는 신호였고, 현지인들은 미리 교통편을 바꾸거나 약속을 조정했다. 반면 둘째는 매번 당일 아침에야 봉쇄를 맞닥뜨리며 골탕을 먹곤 했다.



재미있는 것은 현지인들이 대처하는 태도였다. 사람들은 통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마라톤 구경을 즐기기도 했다. 대회 당일, 거리에는 응원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음악과 환호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달리기 대회가 단순히 교통을 막는 불편한 행사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축제를 즐기는 장이 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둘째만이 외국인으로서 당황하며 발걸음을 돌렸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둘째도 마음을 바꿨다. 이제는 길이 막히면 “아, 또 마라톤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교회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그 시간에 자기 공부를 하거나, 방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그냥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 나라에서 산다는 건, 이런 일에 화내기보다 받아들이는 게 더 현명한 거 같아.”



지난주 내가 서울 한강 근처를 지날 때였다. 서강대교 앞에 “ 마라톤 대회로 교통이 통제됩니다”라는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둘째가 떠올랐다. 아마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혹은 교회 가는 길에 저런 푯말 앞에서 멈춰 서서 한숨을 쉬었겠지. 낯선 땅에서 겪는 불편함이자, 동시에 그 나라에서 산다는 증거 같은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묘해졌다.



어쩌면 유학생활이란 이런 작은 경험들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 일상이 된다. 처음엔 불편하고 불합리해 보이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려니’ 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성숙해진다. 둘째가 마라톤 때문에 교회를 놓친 날들도 결국은 유학생활의 한 페이지가 되어 그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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