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드디어 거주증을 무사히 수령했다. 멀리 위트레흐트까지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가서 얻어온 결과물이다. 작년 이맘때쯤 둘째가 같은 과정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외국에서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로 가는 길, 표지판 하나하나가 낯설고 서툴렀던 그 시절. 부모 입장에서는 늘 걱정이 앞섰다.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을까, 갈아타는 역을 놓치지는 않을까, 행정청까지 무사히 찾아갈 수 있을까. 그저 작은 카드 한 장을 받기 위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과정이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첫째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일찍 도착해서 차례를 기다리고, 안내받은 대로 거주증을 수령했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둘째가 이미 같은 절차를 겪었기에, 경험담을 미리 전해 듣고 준비할 수 있었다. “기차는 이렇게 타, 내려서 저쪽으로 가면 돼, 서류는 저렇게 준비해야 해.” 동생이 알려주는 모양새가 부모로서는 낯설었다. 언제까지나 어리게만 느껴졌던 아이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길잡이가 되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새삼 실감한다.
거주증 수령을 마친 첫째는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둘째가 예전에 다녀갔던 위트레흐트의 작은 관광지를 몇 군데 둘러보았다고 한다. 사진도 몇 장 찍어 보내왔다. 그러나 둘째의 여행기와 비교하면 훨씬 짧고 단출했다. 둘째는 미지의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체험했지만, 첫째는 짧은 시간만 머물다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다. 누군가는 낯선 곳에서 모험을 즐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안정과 익숙함을 택한다. 부모로서는 “이왕 간 김에 조금 더 보고, 먹고, 느껴보지 그랬니”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 또한 아이의 선택이니 존중할 수밖에 없다.
위트레흐트는 네덜란드에서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운하가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길게 뻗은 자전거 도로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이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상징은 다름 아닌 작은 토끼 캐릭터, 미피다. 미피의 탄생지인 만큼 도시 곳곳에서 미피를 만날 수 있다.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신호등조차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다. 붉은 불과 초록 불빛 안에 그려진 그림이 사람이 아니라 미피다. 신호등 앞에서 발을 멈추면, 토끼가 손을 들고 서 있다. 초록 불이 켜지면 미피가 한 발 내딛는 모양새로 바뀐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귀여운 도시의 장치다.
또 하나의 상징은 무지개 횡단보도다. 일반적인 흰색 줄무늬 대신 무지개 빛깔이 거리 위에 칠해져 있다.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첫째가 보낸 사진에도 그 무지개 횡단보도가 담겨 있었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가운데 서서 포즈를 취하고 인증샷을 남기는 장소인데, 녀석은 소심하게 멀찍이 찍은 사진 한 장만 보내왔다. 화려한 제스처도 없고, 짧은 멘트 하나 덧붙인 사진. 그러나 부모는 그 사진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가 무사히 다녀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안도였다.
아이들의 유학 생활은 늘 학업 중심으로 돌아간다. 수업, 과제, 시험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그러나 가끔 이런 짧은 여행이나 외출이 아이들의 마음을 환기시킨다. 위트레흐트에서의 반나절은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부모에게도 하나의 기록으로 남았다. 둘째가 먼저 길을 열고, 첫째가 그 길을 따라가며 서로에게 경험을 나누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부모는 그 성장을 멀리서 지켜본다.
거주증이라는 카드 한 장이든, 무지개 횡단보도의 사진 한 장이든,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느낀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낯선 도시를 스스로 찾아가고, 해결하고, 돌아온다는 것. 그 길 위에서 아이들은 독립을 체득한다. 부모로서는 다소 아쉽더라도, 결국 아이들이 걸어온 발자국이 남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