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거주증 수령하기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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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으로서 네덜란드에 들어와 산다는 것은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땅을 밟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학생이라면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절차가 있다. 거주증을 받아야 한다. 이 거주증은 이름처럼 단순히 신분을 확인하는 카드가 아니다. 네덜란드 땅 위에서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근거이고, 은행 계좌를 열고, 휴대폰을 등록하고, 심지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조차 필요한 열쇠다. 거주증이 없다면 유학생은 학생이 아니라 단순한 여행자에 불과하다.



네덜란드의 행정은 합리와 효율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막상 외국인의 입장에서 그 과정을 마주하면 황당하고 낯설다. 거주지를 암스테르담에 두었더라도, 거주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트레흐트까지 가야 한다. 기차로 한 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왜 굳이 그곳이어야 하는지, 왜 대학 도시마다 처리 창구가 없는지, 부모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그렇다. 그들의 질서와 행정 체계는 이미 그렇게 짜여 있다. 한 개인이 불만을 말한들 바뀌지 않는다. 결국 외국인 유학생은 그 절차를 따를 수밖에 없다.



둘째도 암스테르담 지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절, 위트레흐트로 향했다. 낯선 기차역에서 갈아타고, 표지판을 따라 행정청 건물까지 찾아갔다. 안내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아 기다렸다. 이방인의 이름이 호명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창구의 직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서류를 확인한다. 그 모든 과정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에게는 하나의 통과 의례였다. 거주증을 손에 쥐고 나오는 순간, 아이는 외국인으로서 네덜란드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첫째가 그 절차를 밟으러 간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부모의 눈에는 하루 이틀 전 일처럼 선명한데, 둘째는 이미 그 과정을 경험하고 성장해 있었다. 둘째는 이제 막 거주증을 받으러 가는 첫째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다. 준비해야 할 서류, 어떤 창구로 가야 하는지, 기다리는 동안 어떤 태도로 있어야 하는지. 동생이 형에게 경험을 전하는 풍경은 부모로서는 낯설고도 감동스럽다. 불과 1년 전에는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다며 부모에게 전화를 걸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길을 가르쳐줄 만큼 자라 있었다.



첫째는 작은 것까지 물어본다. 마치 큰일이라도 치러야 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묻는다. 부모는 그 질문 속에서 아이의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하지만 이미 경험한 둘째는 여유가 있다. 짧고 간단한 대답이지만, 그 안에는 지난 1년간 체득한 단단함이 녹아 있다.



이방인이 타지에서 산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길을 찾는 일부터 서류를 준비하는 일까지, 작은 순간마다 장벽이 있다. 그 장벽은 언어이기도 하고, 제도이기도 하며, 때로는 문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하나씩 넘어설 때마다 아이들은 조금씩 강해진다. 거주증은 그저 카드 한 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카드가 의미하는 것은 크다. 낯선 땅에서 자신이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보장, 머무를 수 있다는 정당성이다. 그것은 작은 안도감이자 생존의 기초였다.



유학이란 결국 이런 사소한 절차들을 견뎌내는 일이다. 학문은 강의실에서 배우지만, 삶은 이런 순간들에서 배운다. 그 과정을 통해 독립을 익힌다. 거주증을 받으러 가는 기차 안에서, 대기실 의자에 앉아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순간에, 서류에 사인을 하고 지문을 찍는 순간에,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는 법을 배워 간다.



행정 절차 하나가 아이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안쓰럽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과정을 겪으며 단단해져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안도한다. 타향에서의 삶은 늘 서럽고 고단하다. 그러나 거주증이라는 이름의 플라스틱 카드가 아이의 삶을 지탱한다. 부모도 그 카드에 조금은 기대어 안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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