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유학을 가서도 점심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대충 빵이나 파스타 같은 걸로 끼니를 때우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의외로 성실하게 한 끼 한 끼를 챙겨 먹었고, 그것을 빠짐없이 사진으로 기록해 부모에게 보내주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단순히 “잘 먹었다”는 소식 그 이상이 전해졌다. 그것은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부모의 불안을 덜어주는 안부의 징표였다.
처음 멀리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은 늘 그렇다. 혹시 굶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몸이 약해지는 건 아닐까, 혹시 혼자 외로이 지내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이 머릿속에 구름처럼 맴돌았다. 하지만 아이가 보낸 사진 속 한 접시는 그 걱정을 조금씩 흩어지게 했다. 밥을 잘 챙겨 먹고 있다는 사실은 곧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안다는 표시였다.
어느 날, 둘째가 보낸 사진은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스테이크였다. 그것도 대충 굽다 만 고기가 아니라, 두툼하게 잘 구워낸 소고기 스테이크였다. 곁들임으로는 감자와 빵, 그리고 신선한 루꼴라까지 놓여 있었다. 단순히 고기를 구워낸 것이 아니라, 한 끼 식사의 구성을 생각하고 준비한 흔적이었다. 그 모습에 부모는 순간 놀라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사실 부모의 머릿속에는 늘 “타국에서 고생하며 밥도 못 먹고 있겠지”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한 끼를 건너뛰거나, 그저 컵라면과 빵으로 버티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웬걸. 스스로 장을 봐서 고기를 사 오고, 정성껏 구워낸 뒤 균형 잡힌 식단을 차려내는 모습은 그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독립적으로 자라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물가가 비싼 도시다. 외식은 부담스러울 만큼 비싸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장바구니 물가만큼은 의외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품목은 오히려 한국보다 저렴하기도 했다. 고기와 채소, 치즈 같은 것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었고, 아이는 그 점을 활용해 스스로 메뉴를 짜고 끼니를 책임졌다. 그날의 스테이크도 아마 그런 계산 끝에 나온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진 속 음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독립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부모가 고기를 사다 주고, 반찬을 해주고, 밥상을 차려주었다. 아이는 그저 앉아 먹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책임졌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직접 사서, 조리하고, 차려내야 했다. 그것은 삶의 전 과정을 감당하는 연습이었고, 그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성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이 사진이 단순한 음식 사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자기 몫을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증거는 부모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서운함도 스쳤다. 집에 있었다면 아이가 원하는 날, 언제든 스테이크를 구워줄 수 있었을 텐데. 아이가 멀리 가서야 스스로를 챙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니, 부모로서는 뿌듯하면서도 아쉬운 일이다.
화면 속 스테이크는 그저 고기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에게 보낸 위로이자, 부모에게 보내는 안부였다. “나 잘 지내고 있어. 잘 먹고 있어.”라는 말이 고기와 감자, 루꼴라의 조합 속에 담겨 있었다. 부모는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음식의 향기까지 전해지지는 않지만, 그 너머에 있는 아이의 마음과 생활은 뚜렷이 느껴졌다.
유학이라는 길은 화려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서러운 길이다. 언어와 문화의 벽, 낯선 환경,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모든 책임이 아이의 어깨에 얹힌다. 하지만 그 서러움 속에서도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챙기는 법을 배운다. 그것이 성장이다. 부모는 그 사실을 사진 한 장에서 확인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이는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부모는 매일 오는 사진들을 보며 안도했다. 그 한 접시 한 접시는 결국 부모를 위한 안부였고, 동시에 아이 자신을 다독이는 위로였다. 결국 유학이란 이런 소소한 안도와 의외의 놀라움이 켜켜이 쌓여 가는 시간 아닐까. 부모는 오늘도 또 다른 점심 사진을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