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대학에는 공식적인 기숙사가 없다. 학교가 직접 운영하는 기숙사는 없고, 대신 사립업체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숙사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대학은 입학허가를 내어줄 뿐, 머물 곳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숙사마다 조건이 다르고,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방의 크기와 시설, 위치, 공용공간의 질, 세탁기의 규정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다. 부모의 눈에는 그 차이가 실감 나지 않지만, 아이의 생활은 그 작은 조건들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둘째가 처음 배정받은 기숙사는 암스테르담 디멘(Diemen)에 있었다. 도시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으나, 위치는 나쁘지 않았다. 기차역과 가깝고, 자전거로 학교까지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 30분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무엇보다도 근처에 슈퍼마켓이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장을 보러 먼 길을 가지 않아도 되었고, 생활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유학생활의 시작은 작은 편리함에서 비롯된다. 가까운 슈퍼가 있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조건이었다.
기숙사의 세탁 규정도 이곳만의 특색이 있었다. 층마다 세탁실이 있었고, 세탁기는 무료였다. 건조기도 있었다. 동전 하나 넣을 필요가 없었다. 가난한 해외 유학생에게 이것은 은혜와도 같았다. 첫째가 지내는 기숙사에는 세탁비와 건조비를 매번 투입해야 하는 코인 세탁기가 있다. 세탁 한 번, 건조 한 번이 생활비를 갉아먹었다. 빨래를 쌓아 두었다가 몰아서 하는 습관은 코인 세탁기의 값비싼 현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러나 둘째의 기숙사에서는 그런 부담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다. 그것은 작은 자유였고, 아이에게는 고마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언어였다. 세탁기의 모든 기능과 안내문이 네덜란드어로 적혀 있었다. 당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프로그램 버튼을 눌러도 뜻을 몰랐다. 세탁인지, 헹굼인지, 건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문명의 이기인 구글 번역 앱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화면에 네덜란드어가 번역되어 나타났다. 그제야 어느 버튼이 ‘세탁’이고, 어느 표시가 ‘탈수’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번역이 늘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겨우겨우 이해할 만큼은 되었다. 세탁기는 돌아갔고, 빨래는 깨끗해졌다.
이것이 유학생활의 단면이었다. 기숙사의 조건은 아이의 삶을 지탱하는 현실이었고, 언어의 장벽은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가 전해주는 말 속에서 불편을 상상할 뿐이었다. “세탁기 설명이 다 네덜란드어라서 힘들다”라는 한마디 뒤에는, 모르는 언어 앞에서 막막해하며 휴대폰을 꺼내든 순간이 있었다. 작은 불편과 당혹,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작은 성취가 거기에 있었다.
유학이란 이런 생활의 누적이다. 거창한 학문이나 큰 깨달음만이 유학의 전부는 아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언어의 벽에 부딪히고, 구글 번역에 의지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쌓이고 쌓여 아이를 단단하게 만든다. 언젠가 네덜란드어가 더 익숙해지면, 세탁기 앞에서 허둥대던 그 시절을 웃으며 떠올릴 것이다.
언어의 장벽이 크지만, 그 장벽을 넘는 순간마다 아이가 스스로를 믿게 되기를.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응원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자라 있었다. 낯선 언어 앞에서 구글 번역을 켜고, 알아내고, 해결하는 힘을 길러가고 있었다. 유학생활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기숙사는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곳에서 자기만의 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세탁실에서 돌아가는 기계음 속에, 나는 아이의 성장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