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대학 시험전용 UvA 계산기

by 행당동 살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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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다니는 과에는 특이한 규정이 있었다. 시험을 볼 때 쓰는 계산기는 아무 모델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드시 학교에서 지정한, 학교 마크가 찍혀 있는 계산기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었다. 기능은 평범한 공학용 계산기와 다를 바 없는데도, 규정은 규정이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써오던 계산기도 소용이 없었다. 새로 사야 했다.



둘째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화를 냈다. 밖에서 사면 몇 유로면 살 수 있는 저렴한 모델인데, 학교 마크가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두 배 가격인 20유로를 내야 했다. 억울하다고 했다. 부당하다고 했다. 아무 기능 차이도 없고, 모양도 같은데, 단지 학교 마크 하나가 찍혀 있다는 이유로 비싼 값을 내야 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가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20유로. 큰돈은 아니었다. 매달 내는 기숙사비, 생활비, 등록금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였다. 시험장에서 필요한 물건이라면 그냥 사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불합리한 제도 앞에서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 이미 계산기가 있는데도, 단지 규정 때문에 또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그 모습이 때로는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기특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면 쉽게 넘어가지 못하던 아이였다. 자기 기준이 분명했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부모의 눈에는 사소한 일처럼 보여도, 아이의 눈에는 세상과 맞서는 하나의 장면이었다. 어쩌면 그 단단함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험이나 잘 봐라.” 그것이 아비의 마음이었다. 계산기 가격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그 계산기를 손에 쥐고 치르는 시험에서 아이가 제 실력을 다 발휘하길 바랄 뿐이었다. 결국 계산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그 도구를 통해 풀어내는 사고와 끈기였다.



아이의 분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하다는 투덜거림은 가끔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계산기는 이미 아이의 것이 되었고, 앞으로 3년 동안은 아이와 함께해야 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크고 작은 시험장에서 늘 손에 들려 있을 것이었다. 긴장으로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올 때도, 성공의 환호를 삼킬 때도, 실패의 쓰라림을 안을 때도 그 계산기는 곁에 있었다.



언젠가는 낡아버린 버튼과 희미해진 학교 마크를 보며 지금의 억울함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감정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분개와 불평 대신 애정과 추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계산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유학 생활의 동반자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분노는 어쩌면 세상과 맞서는 연습일지 모른다. 세상은 늘 합리적이지 않고, 때로는 억울하고 불공정하다. 그럴 때 분개할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자기 길을 스스로 열어 간다. 나는 아이가 그 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아비로서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시험을 잘 보는 것. 학업을 잘 이어가는 것. 그 위에서야 비로소 분노도 의미를 가진다.



둘째는 이제 계산기와 함께 걷는다. 처음에는 불합리한 강매처럼 다가왔지만, 결국 그 계산기는 아이의 유학 생활을 함께 살아내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시절을 돌아볼 때, 아이는 말할 것이다. “그래도 저 계산기랑 참 많은 시간을 보냈지.” 나는 그 회상을 들으며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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