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대학에 입학한 뒤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시험이었다. 낯선 언어로, 낯선 제도 속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은 분명 큰 긴장이었을 것이다. 녀석의 목소리에도 미묘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자신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뒤섞인 목소리였다. 부모는 멀리서 그 떨림을 느낄 뿐이었다.
시험은 학교에서 보지 않았다. 캠퍼스에는 모든 학생을 동시에 수용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시내 외곽의 시험센터로 이동해야 했다. 낯선 길을 따라, 낯선 건물로 들어서서, 수백 명의 학생 사이에 앉아야 했다. 시험장의 공기는 무겁고 팽팽했을 것이다. 연필 소리와 종이의 바스락거림, 시험관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처음의 시험을 치렀다. 아이는 그 속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모가 바라본 것은 그 자리에 앉아 시험지를 마주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수고로운 일이었다. 긴장을 이기고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고했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자 아이는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내렸다. 라면 한 봉지를 끓이고, 김치를 곁들이고, 조미김을 뜯었다. 거기에는 기묘한 해방감과 작은 위로가 담겨 있었다. 그릇 위로 피어오르는 김, 붉은 국물, 김치의 매운 냄새가 화면을 넘어 전해졌다. 한국인이라면 참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라면과 김치, 그리고 김. 단순하지만 완벽한 위안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바라봤다. 수고했다는 나의 마음과, 스스로를 달래는 아이의 마음이 겹쳐졌다. 집에 있었다면, 나는 아마 뜨끈한 김치찌개를 끓여주었을 것이다. 밥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올려놓고, 아이에게 “고생했다”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는 사진 한 장으로 아이의 위로를 짐작할 뿐이다.
본인이 본인을 위한 음식을 차려 먹는 일. 그것은 즐거움일 수도 있고, 서러움일 수도 있다. 라면 국물을 떠먹으며 아이는 잠시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타향살이는 그렇게 웃음과 서러움이 한 그릇에 담겨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서러움을 안다. 그것이 쌓여서 유학생활이 된다. 시험의 긴장, 음식의 위로, 낯선 곳에서 홀로 버텨내는 날들이 층층이 쌓여 아이의 시간이 된다. 그 시간은 서럽지만, 동시에 단단하다. 부모는 그 단단함을 바라본다. 마음속에서는 늘 “수고했다”라는 말을 되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