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는 디먼이라는 도시가 있다. 암스테르담 남동쪽에 붙어 있는 작은 도시다. 우리 식으로 치면 동탄쯤 될까.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조용하고, 마을이라 하기에는 제법 넓다. 그곳에는 고층빌딩도, 요란한 간판도 없다. 그저 낮은 건물들이 길게 이어지고, 그 사이로 바람이 흐른다.
나는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 내가 디먼이라는 이름을 외우게 된 건, 둘째 때문이다. 1년 전, 둘째가 처음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기숙사에 함께 갔었다. 그때 처음 본 도시가 디먼이었다. 공기는 서늘했고,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다. 기숙사는 한적한 주거지 한켠에 있었다. 자전거가 문 앞에 세워져 있고, 창가에는 식물이 놓여 있고,하얀 컵이 빛을 받으며 놓여 있었다.
그날 나는 디먼의 거리를 걸었다. 도로 옆으로 수로가 따라 붙고, 그 위로 오리들이 떠다녔다. 물은 조용히 흐르고, 사람은 그 옆을 천천히 걷는다. 그 풍경은 단정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듯했다. 크지 않게, 그러나 흐트러지지 않게.
둘째는 그곳에서 1년을 살았다. 처음에는 어색했을 것이다. 기숙사의 벽, 좁은 부엌, 낯선 냄새. 하지만 사람은 어디서든 익숙해지는 법이다. 둘째는 그곳에서 요리를 하였고, 공부를 했고, 그 나름의 리듬으로 하루를 보냈다.
1년이 지난 지금, 둘째는 다시 그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이제는 2학년이 되어, 새로운 기숙사에서 새로운 수업을 듣고 있다. 그런데 굳이 그 낡은 건물로 돌아간 이유를 알것같다. 사람은 자신이 처음으로 고단하게 버텼던 곳을 잊지 못한다. 그곳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유학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 디먼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늘은 여전히 낮았고, 바람은 여전히 느렸다. 그런데 사진 속의 둘째는 달라졌다. 작년보다 단단해 보였다. 눈빛에는 여유가 생겼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디먼은 그대로인데, 그 안의 아이만 자랐다.
내가 살던 동네의 기억처럼, 둘째에게도 이제 하나의 ‘기억의 장소’가 생긴 것이다. 그곳의 공기, 소리, 냄새가 앞으로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디먼에서의 1년은, 둘째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언어의 벽, 사람들과의 거리, 홀로 보내는 저녁. 그러나 인간은 고독을 견디면서 자란다. 둘째는 그곳에서 버티는 법을 배웠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익혔다. 이제는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챙길 줄 안다.
언젠가 둘째가 더 먼 곳으로 가더라도, 그 마음의 어느 모퉁이엔 언제나 디먼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라, 그 아이의 독립이 시작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낯선 공기를 마시며, 자신의 두 발로 하루를 세운 곳. 처음으로 외로움을 견디며, 그 외로움을 자기 힘으로 이겨낸 곳.
나는 그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그곳은 내 도시가 아니지만, 둘째가 있었기에 나에게도 낯설지 않다. 누군가를 통해 배우는 공간의 온기, 그건 부모에게 주어진 또 다른 축복이다. 디먼은 내 기억 속에도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지도 위의 한 점이 아니라, 한 아이의 성장과 그 모든 날의 증거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