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긴 선이 보인다. 직선으로 뻗은 길일지도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아 끝이 정말 있는지 내리막길인지 오르막길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뻗은 선. 아니, 길.
동그라미는 분명 동그란데, 모나지 않았는데. 뾰족한 부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나를 찔러대고 있다. 저 반질반질한 구가 나에게 상처를 내고야 만다.
나는 동그라미를 가슴팍에 쏙 품었다가 가슴팍을 찔려 고통에 내던졌다가를 반복한다.
끝 없이 길게 뻗은 길을 동그라미와 걷는다.
가지처럼 난, 샛길이라고는 없는 길고 긴 선 위에서 나는 동그라미를 통통... 어릴 적 문방구 천장에 양파망 같은 망에 줄지어 있던 탱탱볼처럼 튕겨보기도 하고,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두고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찔러대는 동그라미에 상처받기도 한다.
주변이 어두워졌다가, 어스름해졌다가, 밝은 회색빛이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동그라미는 점점 완벽한 구의 형태가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 동그라미의 존재를 깨우쳤을 때도 이토록 똥그랬던가. 동그랗다는 말로 다 표현이 되지 않은 똥그람.
끝없는 선 아니, 길에 압도당하고 똥그래진 동그라미를 보는 새 나는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어땠던가. 나는 어떻게 생겼던가. 나도 동그랗던가.
상처로 까져버린 감각을 깨워 손을 찾아본다. 오른손은 찾았는데 왼 손이 보이지 않는다.
왼손.. 왼손은? 나지막이 묻자 오른손이 어물쩍거리며 내게 일깨워준다.
-잠수 탔어.
-왜?
-네가.. 아니, 우리가... 아니, 네가 오른손잡이라서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칼을 오른손에만 쥐니까. 그래서 그래.
-오른손잡이인 내가 칼질을 오른손으로만 해서 그렇다고?
-그래서 늘 칼에 베이는 건 왼손이니까.
-...
상처받은 왼손은 그렇게 숨어버렸다고 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도, 속도를 내어 추격해 오는 칼에 베이지 않기 위해 재빨리 잘릴 것을 찾아 칼날 아래 밀어 넣어야 하는 것도 싫어져서.
나는 왼손의 행방을 찾기를 포기한다. 혼자서 피 흘려온 왼손을 놓아주기로 한다.
오른손만으로 나를 더듬어본다. 손 끝이 지나가는 곳에 다시 감각이 깨어난다. 잊었던 상처들이 아려온다. 잠시 잊었던 상처가 주는 고통은 처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너무 아파 나의 모습을 궁금해한 것을 후회한다. 왼손이 되어 가라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