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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지가지 Sep 17. 2018

제안서를 쓰자고 앉았을 너를 위한.

소소소소소 초소소소소소한 팁이랄까.

대표님이 공연 제안서 좀 써보란다. 

공연 제목과 내용을 한 20초 정도 말씀해 주시더니. 그러더니.... 나가셨다.

제안서 좀 써서 메일로 보내놓으라는 말을, 꼬리처럼 남겨두고는 쏙 .. 


머릿속으로 대충 내용을 짜보고는 1장짜리 제안서를 작성한다. 그리고는 그간 열심히 모아둔 ppt템플릿이 가득한 폴더를 펼쳐본다. 쓸만한 것을 추려내어 저장해둔 폴더1에는 60여개 남짓한 템플릿이 들었고 D드라이브 어디엔가는 1000개도 넘는 템플릿들이 굴러다닌다. 기획팀장의 재산은 왜 돈이 아니라 이런 것일까. PPT를 청약통장처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허 .. 


그러다, 옆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는 친구에게 언젠가 가르쳐 주고 싶었던 PPT작성할 때 그간 고려한 것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하나, 사람만큼 첫 인상이 중요하다구.

매력적인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열심히 피력하지 않는다. 

TV광고를 생각하면 심플하다. 자동차를 팔겠다고 회사의 연혁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 

커피를 팔겠다고 커피 안에 들어간 모든 원료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해서,

목차의 1번에 우리 회사 소개를 넣지 않아도 괜찮다. 

PPT를 열어놓고 1번으로, 우리가 가장 공들여야 하는 것은 그러니, 

'왜' 굳이 '당신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왜 이 차를 사야 하는지, 왜 이 커피를 마셔야 하는지

그것을 사고싶게 하는, 마시고 싶게 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 

왜 해야하느나에 대한 타당성을 맨 처음에 먼저 알려주자.

상대는 맨 마지막에 그것을 들어도 될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 회사에 대한, 나에 대한 소개는 마지막에 해도 늦지 않다. 당신이 제안을 훌륭하게 했다면,

어쩌면 상대가 먼저 물어올지도 모른다.


둘, 받는사람이 누군지는 알아야지.

제안서는 입사할 때 쓰는 자소서와 비슷하다. 여기저기 입사지원을 하기 위해 러프하고 유연하게 쓴 자소서는 

쓸모는 많아보여도 합격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회사 하나에 대해서 콕 찝어 열렬히 쓴 자소서는, 그래도 면접은 보러 가게 해준다.


공연이나 다른 행사 기획 제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삼성에 사회공헌 측면에서의 공연을 제안을 하려거든 삼성+공연 또는 삼성+메세나 또는 삼성+기업후원 등등 제안하고자 하는 회사와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을 키워드로 조합해 열심히 검색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기업이 무엇을 이미 하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느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게 되고 그제야 그들이 원하는 소스를 내 기획안에 담을 재량이 생긴다. 


셋, 내가 볼 제안서는 없다니까.

나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다. 문화 행사나 공연을 기획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기업들에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우리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우리가) 볼 제안서는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인 제안서를 작성한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내가 잘 쓰는 어휘, 내가 이해한 그대로.

우리는 타인이 볼 문서를 만든다. 그는 나와 동종업계에 있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업계 전문 용어를 너무 많이 쓴다거나, 나에게 편한 언어들로 제안서를 가득 채워서는 안된다.

기업에게 제안할 때는 기업 친화적으로 써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작성한 제안서를 팀원들에게 피드백 받거나 주변 다른 기업에 있는 지인들에게 슬쩍 내보여 반응을 한번쯤 살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이해가 잘 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내가 볼 제안서는 없으니까. 나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니까.


넷, 어떻게 설득할지, 컨셉을 잘 정하자.

간단히 말해서, 상대를 이성적인, 논리정연함으로 설득한 것인지. 스토리텔링에 힘을 실어 감동을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려는 것이 청년 취업율이나 지역문화행사 개최 수 등의 어떤 사회적 수치를 월등히 올려줄 수 있는 활동이라면 그 당위성으로 설득을 하는 것이 나을 수 있고,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면 감동을 주는 쪽으로 컨셉을 정하면 더 쉽다. (정답은 아니지만. 경험 상.)


다섯,  사업 개요에서 이미 결정이 났다.

제안서를 ppt로 작성하기 전 항상 가장 먼저 할 일은 1page proposal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페이지짜리 제안서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유용하다.

자질구레한 모든 설명이나 첨부자료를 걷어내고, 아이디어를 빠르게 확인하고 구체화하자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전달해 주는 것은 상대의 시간을 아껴줌과 동시에 나의 에너지도 아낄 수 있게 해준다.

'뭘'하자고 하는건지, '왜'하자고 하는건지가 분명하면서도 충분하고, '어떻게'하자고 하는 것인지 간략히 들어간다면 더할나위 없다. 


한 페이지 기획서에 들어갈 것은 아래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1. 아이디어(제안하고자 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

2.  제안의 배경(누구나 동의하는 팩트)

3.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서, 어떻게, 누가

4. 기대효과(타당한 근거가 있는 기대효과와 계량효과의 예상치)

5. NEXT STEPS (이를 위해서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액션플랜)


그리고 당부하건데, 100%짜리 제안은 없다.

예산내역을 추가하려거든 자부담금액이 늘 어느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협업이다.


여섯, 나만 좋은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좋아할만한 것을 제안하자.

상대의 만족 없이는 나의 만족도 없다. 

뭉뚱그려 내가 하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정말이지 헌신짝에도 쓸모가 없다. 아 진짜 좋은데 진짜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하는 것이 애석하게도 제안서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우리가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 차별점을 설명해야 하고 나만이 가진 강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꼭 상대가, 그 기업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 역시도 끊임없이 알려주어야 한다. 상대가 '아 진짜? 그럼 우리가 해야겠는데...' 하고 느낄 수 있을 때 까지.


일곱, 예산은 상식적으로, 디테일하게 작성하자.

상대는 내가 내민 제안서 말고도 다른 많은 제안서를 봐왔을 것이다. 그러니 터무니없이 측정된 예산이나 필요이상의 지출건들은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남의 지갑에서 단 돈 만원 꺼내오기도 힘든 세상에 눈뜨고 당할 기업이 몇이나 되겠나. 그러니 예산은 상식적으로, 설명가능한, 설득력 있게 작성하자. 큰 지출이 필요하다면 왜 큰 지출이 반드시 사업의 과정에 있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도리이다.


여덟. 제안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잘 맺는 일이다.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오늘만 날인가.' 


마찬가지이다. 제안을 하는 지금, 오늘만 날이 아니다.

오늘의 제안은 좀 흐지부지 실패각이 나와도 상대방과 관계를 잘 맺고 나아가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손해를 보거나 시간을 쓰는 것은 당장에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지, 내가 이 가치를 위해서 하는 일이 정말로 가치가 넘쳐나는 일이며 당신에게도 언젠가 좋을 것이다 하는 인상은,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언제가 서로 다시 불러들일 가능성이 생긴다.


오늘 당장 님도 보고 뽕도 따면 좋겠지만

오늘 님만 보더라도 괜찮다. 

뽕을 따던 밥을 먹던, 님도 내가 마음에 들면 우리에게는 다음이라는 충분한 시간들이 많다.

그러니 오늘 반드시 뽕도 뽑을 요량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

내일의 기대를 남겨놓을 줄 아는 것도 베테랑이다.


아홉, 덧붙이는 것들.

기업이나 기관에 제안을 한다면 9월쯤 부터 10월에는 해야 한다. 차년도 예산 집행 계획은 이미 11월이면 끝이 나니까.

1회성의 제안보다는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사업이 좋다. 그리고 내가 꾸준히 그것을 해왔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어필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기본적인 오타와 맞춤법은 제발 지키자. 내가 볼 게 아니라 남이 볼거니까. 

명함을 잘 챙겨다니자. 기본중에 기본을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다.





써놓고 보니,

나는 참 많이 알고 있었는데 한두가지 쯤은 늘 놓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 

일 하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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