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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말 Feb 04. 2023

그는 언제나 낯선 존재였다

  결혼할 당시에도 나는 그와 그다지 정서적으로 친밀하다고 느껴본 기억이 없다. 한 마디로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하지도 않으면서 왜 결혼까지 했느냐? 그저 그가 나에게 잘 맞춰주었고 딱히 거슬릴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을까?


  장거리 연애라 만난 횟수는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지만 2년 이상 만났으니 오래 보았다고 생각했다. 결혼 얘기가 나왔는데 고민은 좀 했지만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딱히 결혼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좀 심각한 갈등이 있었더라면 그의 진짜 인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운은 나에게 따라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몹시 외로웠고 불안했다. 그래서 나의 진짜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는지, 정말 좋아하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지 않았다. 지금 이 사람이 싫지도 좋지도 않지만 그저 이 사람이 결혼 후에도 지금 하는 것처럼 나를 대한다면 그의 다른 결점은 어느 정도 가려지고 살다 보면 정도 더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막연히 결혼이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나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더해져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결과는 참담했다.


  그와 나의 관계는 어색했다. 어떻게 어색한지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일상적인 필요에 의한 대화는 가능했다. 하지만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그와 공유하는 것은 왠지 모르지만 거의 불가능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보고 그는 때로 감탄하는 말들을 내뱉었다. 하지만 묘하게 와닿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자신의 만족감이나 생각을 표현하는데 그쳤다. 내가 어떠한 의견을 내면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다른 사람들한테 좀 물어봐.’라고 하기 일쑤였다. 그의 관심사는 얕고 넓었다. 그가 화제를 꺼내고 내가 거기에 대한 질문을 하면 대화가 끊어졌다. 처음에 나에게 얘기한 그 정보나 의견이 할 말의 전부였던 것이다.


  연애할 때도 교감이 잘 된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나를 칭송하는 말은 자주 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고 요즘 하는 말로 티키타카가 잘 되지 않았다. 난 서로의 눈을 보며 알콩달콩 대화하는 커플들이 부러웠다. 서로 허리를 감싸고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가는 커플들처럼 나도 누군가와 친밀하게 스킨십하고 싶었다. 그와 데이트하는 동안에도 나는 다른 커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말한 적도 있는 것 같다. 걸어갈 때 혼자 막 걸어가지 말고 같이 가자고. 하지만 어느새 그와 나는 어색한 거리에서 어색하게 걷고 있었다. 나의 감정을 읽을 줄 모르는 그를 보며 숫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게 정말 큰 착각이었다.


  신혼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이상한 기분도 잊을 수가 없다. 관광을 하느라 배를 탔는데 멀미가 너무 심해서 배에 있는 화장실로 세 번이나 달려가서 토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너무나 뜨뜻미지근한 것이다. 마치 남을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려도 괜찮냐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가 등을 두드려주거나 나를 걱정해서 어떤 행동을 한 기억이 없다. 그는 그저 나를 멀뚱멀뚱 보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무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눈치가 있고 없는 것과는 달랐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같이 어느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내 팔에서 채혈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지러우면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휘청휘청하며 밖으로 나와서 대기하는 의자로 갔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남편인 줄 알고 다리에 기대서 어지러움이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처음 보는 남자인 거다. 너무 놀라서 죄송하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 상태가 안 좋아 보이셔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남자가 가만히 있었던 것도 좀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이상한 건 잠시 후 이 일을 그에게 말했을 때 그의 반응이었다. 또다시 그 표정.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는 멀뚱멀뚱한 표정이었다. 무슨 반응이 있어야 내가 해명이라도 하고 아니면 같이 황당해하면서 웃기라도 할 텐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감정, 생각의 공유가 안되니 그와 같이 있는 것이 정말 재미가 없고 점점 그에게선 어떤 행동도, 아무 말도 기대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갔다. 이러니 내가 외롭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이 행동 패턴들이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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