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소중한 것을 위한 우리의 선택에 대해
*스포일러 있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도망부끄)>는 지난해 한국에도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이다. 특히, 드라마가 끝난 뒤 엔딩으로 나오는 OST의 춤이 크게 유행하며 많은 커버댄스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방송 전문 채널인 채널 W에서 방영이 되었는데, 타 번역들과는 차별화된 한글 자막으로 인해 시청하기 굉장히 편리했다. 현재는 사카구치 켄타로가 나오는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도 방영 중인데 나는 이미 첫 화를 놓쳐서 다음에 몰아서 볼 예정이다.
무튼, <도망부끄는> 제목 그대로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마저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엉뚱하고 망상을 잘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서 누구보다 책임감을 느끼고 똑 부러지게 행동하는 미쿠리(각키)와 연애를 해 본 적 없고 자존감이 낮은 건어물 남 츠자키(호시노 겐)가 계약 결혼을 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도망부끄>는 각키 출연보다 드라마 자체가 재미있다는 평이 많아서 보게 되었는데, 사실 남주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내 주제에 남의 외모를 따져버림..) 어딜 봐도 심히 유재석(?)을 닮은 듯한 외모인 데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에서는 더욱 유느님의 얼굴이 떠올라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심지어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호시노 재석이라는 애칭 아닌 애칭이 붙어버리기도 한 듯하다. 어쨌든, 이 사람 뭐지? 싶은 마음에 네이버에 검색해 본 결과, 그는 음악도 하고 연기도 하며 글도 쓰는 다재다능한 인물이라고 한다.
드라마 초반에는 웃는 모습보다 경직된 얼굴이 많이 잡히는 터라 잘 몰랐는데, 마지막 회에 다다를수록 참 매력 있고 귀여운 얼굴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익숙한 느낌은.. '응답하라 1988'에서 잘생김을 연기했던 류준열을 봤을 때의 감정이 아닌가!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이 배우는 결국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 내 마음을 쿵떡이게 만들어 버렸다.
<도망부끄>에서는 계약 결혼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주제들을 매회 담고 있다. 미쿠리와 츠자키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인 취업난부터 사랑보다 일이 좋은 사람들, 이상적인 결혼 생활, 나이가 많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주변의 시선, 동성연애 그리고 개인의 자존감 문제까지. 하나의 극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전혀 산만하지 않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답을 알려주는 듯한 전개를 보여준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다소 무거운 느낌의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상상력이 좋은 미쿠리 덕에 다양한 포맷의 인터뷰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음성변조 인터뷰나 '진품명품' 같은 감정 인터뷰, 그리고 치어리더와 버스 안내양 등으로 변신 한 각키의 모습까지 볼 수 있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뭐든지 패스트 라이프가 되어버린 요즈음에는 비단 생활에 미치는 것들뿐만 아니라 '사랑'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든 예외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지만, 쉽게 마음을 전하고 또 쉽게 헤어지는 관계가 많아진 가운데, 미쿠리와 츠자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걸리는 기간 동안의 설렘이나 고민은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가졌던 소중한 시간과 감정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서로를 통해 점점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제목에서는 '도망치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도망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힘든 상황에서 도망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작품들을 많이 봐왔던 요즘이라 그런지 더욱 따뜻하고 풋풋하게 느껴졌던 <도망부끄>. 잠들기 전 하루 한 편으로 기분 전환이 되는 드라마였다.
이게 마지막에 나오는 엔딩 영상. 처음에 겐상이 왜이렇게 춤을 잘추나 했었는데 검색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귀여운 코이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