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by 이 문
그놈은 미끼를 던진 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 어분 것이고 절대 현혹되지 마소(영화 곡성 중)


대통령 선거 최대의 악역은 가짜 뉴스이다. 가짜 뉴스는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이다. 선거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가짜 뉴스를 정치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정치인들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제 우리나라 선거에서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방어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가짜 뉴스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수많은 가짜 뉴스가 공유되었는데 주류 언론에 대한 반응이 7300만 건이었던 반면 가짜 뉴스에 대한 반응은 8700만 건이었다고 한다.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힐러리의 이메일을 유출했다고 의심되는 FBI 요원이 시체로 발견됐다”등 황당한 내용들이 사실로 포장되어 퍼져나갔다.


가짜 뉴스는 과거부터 있었다. 대표적으로 ‘서동요’를 들 수 있다. 백제의 서동은 선화공주가 문란하다는 뉴스를 어린아이를 통해 퍼뜨린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귀양 간 선화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다. 중세 시대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도 가짜 뉴스다. 이 가짜 뉴스로 무고한 여성 수십 만 명이 살해되었다. 합리성을 자랑스러워하는 근대 사회에 들어와서도 가짜 뉴스는 힘을 잃지 않는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허위 정보 때문에 관동대지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였다. 이런 가짜 뉴스들은 사회가 합리적이 되면 될수록 힘을 잃을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훈련받고 양식 있는 기자들에 의해 확인된 정보가 전파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발전된 사회에서 가짜 뉴스가 횡횡하는 것은 다소 당황스럽다.


정보화 사회에서 가짜 뉴스가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형식과 뉴스 전파의 속도 때문이다. 현대의 가짜 뉴스는 단순한 소문이 아닌 언론사의 보도 형식을 통해 전파된다. 예를 들어 보자. '마이니치 신문에서 기호 0번 조 00 후보 사전투표 출구조사 1위로 나와'라는 내용이 과거 보수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모두 거짓이다. 마이니치는 이런 보도를 한 적이 없을뿐더러 사전투표에서는 출구조사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론사를 통해 전달된 내용이라고 하니 그럴듯하게 믿는 것이다. 또한 소셜 미디어는 이런 가짜 뉴스의 강력한 유통 통로이다. 마녀에 대한 이야기가 수백 년을 통해 전파되는데 SNS가 있다면 며칠이면 전 세계에 전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명예훼손죄가 있음에도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별도의 법제가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생산과 유통의 제한만으로 가짜 뉴스가 근절될까? 가짜 뉴스의 끈질긴 역사와 그 변화무쌍함을 생각해 볼 때 수요자 쪽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가짜 뉴스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진짜 뉴스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아마 대다수)들에게는 확증편향이 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확증편향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뉴스는 출처도 확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는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접하는 뉴스의 출처가 신뢰할만한지 꼭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글쓴이가 누구인지, 신뢰할만한 전문가인지, 그 사람이 쓴 글이 확실한지 확인해야 한다. SNS에 뉴스들이 떠 돌 때 합리적 의심을 통해 몇 번의 클릭을 더 해보자. 아마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판단이 건전한 민주정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의 있습니다

가짜 뉴스의 죄는 모두 가짜 뉴스 생산자에게만 있을까? 반대로 기존의 언론들은 진짜 뉴스를 생산해왔을까? 진보든 보수든 기존 언론들은 자신의 정파성을 위해 엄밀한 팩트 체크 없이 번번이 사실을 왜곡해 왔고 독자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를 합리적 의심이라 변명할 수 있겠지만 가짜 뉴스도 종종 합리적 의심이라는 이름으로 의혹 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언론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가짜 뉴스에 대한 신뢰는 기존 언론이 진짜 뉴스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므로 가짜 뉴스의 창궐을 막는 좋은 해결책 중의 하나는 팩트에 근거에 뉴스를 보도하려는 진짜 뉴스 공급업체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라 주장할 수 있다.




더 깊은 생각

루터는 중세 가톨릭의 가짜 뉴스에 항의했다. 중세 유럽은 면죄부를 받으면 연옥에 들어간다는 가짜 뉴스, 수도원과 성당의 수입 증대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 기적에 대한 뉴스들을 퍼뜨렸다. 루터는 성서라고 하는 명확한 근거가 아니라면 가짜 뉴스라고 담대하게 주장했다. 종교개혁 후 500년이다. 신도의 감소, 사회적 비난 등 기독교의 위기다. 많은 경우 기독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우리 교회 안에 있는 복음(GOOD NEWS)이 아닌 가짜 뉴스들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대형화, 물질만능주의, 지나치게 부유한 일부 목회자의 삶 등이 가짜 뉴스에 의해 합리화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루터로 돌아가 믿음의 출처인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하는지, 그리고 확증편향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