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사회

by 이 문

위험 사회는 얼마 전 타계한 사회학자 울리히 백의 대표작이다. 때론 난해하고, 때론 공감되는 내용 중의 핵심은 현대 사회가 불확실한 위험이 점증하는 사회라는 것과 전문가들을 너무 믿지 말고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관련하여 한 일본 원전 기술자의 증언이 떠오른다. 그에 의하면 설계의 완전함과 시공의 완전함은 다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설계한 대로 시공하리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의 또 다른 지적들은 다음과 같다. 원자력 발전소의 복잡한 구조는 각 부분의 전문가들은 존재해도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는 전문가가 존재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위험이 상존한다. 원자력 관리는 피폭 누적의 위험 때문에 담당자들이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위험 상황에서 항상 신입이 그 일을 맡아야 하는 셈이다.


원전이 상당히 안전하게 설계되고 운영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탄소 중립 사회의 징검다리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고 100% 안전한 것이 아니라면 사고가 가져올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런 면에서 탈원전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위험 사회인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되거나,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데 터지는 둑의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에서 터지는 식이라 빈도수는 개발도상국이 많지만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나 예외 없이 사고들이 일어난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수많은 참사들이 있어왔다. 대표적인 참사가 삼풍백화점 붕괴인데 502명이 사망했고 세월호가 299명, 서해 훼리호 사건이 29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숫자로만 보면 대학교 4학년 때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지만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다. 내 직업과 관련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 안에서 학생들이 나눈 공포감에 젖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가끔 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고 깊은 슬픔에 잠기곤 한다.


이태원 참사 동영상을 우연히 페북에서 모자이크 없이 보았는데 일주일 내내 너무 무겁고 괴로운 마음이다. 아비규환과 절망과 고통의 목소리, 눈빛들이 잊히지 않고 잠들려 하는 순간에도 떠오른다.


개인 영상을 통해 가감 없이 전달되는 전쟁, 길거리 난투극, 강도, 비극적 사건들의 장면들을 통해 인간이 이렇게까지 나약한 존재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인간 존재의 비극성과 비극성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그 연민은 삶의 실패감 속에서 버거워하는 나를 감싸주고, 사춘기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를 안아주고,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이들과 이들의 가족의 슬픔에 동참하며 손 모아 기도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다만 이 연민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또는 정치적 마타도어 속에서 손쉬운 비난과 증오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조심할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가짜 뉴스